지난 10월부터 우리사무실에는 이상한 바람이 불고있다.

바로 "신개인주의"라는 바람이 그것이다.

내가 이를 처음 목격한 곳은 기숙사내 식당.

게시판에 붙어있는 "개인컵주의"라는 포스터를 통해서였다.

제목만으로는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자세히 그 내용을 살펴보니 하루에 종이컵을 3개씩만 절약하면 연간
4,000만원에 달하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절약캠페인 포스터였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식당 한구석에는 "자기 머그컵을 갖자"라는 주제로 머그컵 판매행사를
펼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단지 일회용 종이컵을 줄이자는 것이 아니라 아예 자기머그컵
갖기운동을 통해 쓰레기량을 과감히 줄이자는 환경보전운동이었다.

식사후 퇴식구에 설치된 푸른 저울도 신선했다.

식당 한켠에선 홀깃홀깃 잔반량을 체크하는 영양사의 눈치를 살피는
사원이나 가위바위보를 통해 자기 잔반에게 돌아올 책임을 상대방에게
돌리는 사원들도 있었다.

처음엔 나도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괜히 죄스런 마음도 생기고 매일 대하던 식판도 다시한번 들여다
보게되었다.

첫날 기준잔반량 70g을 초과하여 영양사에게 주의를 받고 푸른 저울옆에
설치된 환경기금저금통에 자진해서 기금을 납부하는 동료의 웃는 얼굴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왜 기분이 나쁘지 않았을까.

그건 바로 환경벌금이 환경과 불우이웃돕기 기금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라는 영양사의 설명이었다.

지난 21일 우리 부서원 13명은 다음날 벌어질 회사의 예쁜머그컵
선발대회에 대비,사전예선전을 치르느라 한바탕 난리법석을 떨었다.

특히 입사한지 얼마되지 않은 모신입사원의 경우 1회용 종이컵을
무단사용한 죄(?)로 부서환경규정에 따라 5일간 빠떼루(한번 사용한
종이컵을 5일간 사용한다)를 당한후 그 위력을 실감했는지 이번엔
절치부심, "불로장생 머그컵"을 선보이기도 했다.

특히 평소 몸무게가 상대방이 보기에 부담스러웠던지 모대리의 경우
체격에 걸맞지 않게 "다이어트컵"을 선보여 체중감량에 대한 결의를
보이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작게 느껴지는 자기 머그컵 갖기운동 물불다끄기
운동 푸른저울제 등 신개인주의 실천항목들은 처음엔 반강제적(?)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머그컵 판매행사, 예쁜 머그컵 경진대회, 환경벌금제,
절전옐로카드제등 다양하고도 흥미있는 행사들을 통해 전사원들의 자발적
참여분위기를 유도해 나가고있다.

요즘 국내 기업 대다수가 불황으로 고전하면서 기업 경쟁력을 부르짖고
있다.

나는 이번 신개인주의 운동을 통해 회사 차원의 경쟁력은 개개인의
의식개혁과 올바른 기업문화 정착에서 출발된다는 확고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

이번 운동은 구호로 그치는 요란한 일과성 캠페인이 아닌 생활속에서 작은
관심을 통해 실천할 수 있는 올바른 기업문화정착이라는 면에서 참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임종성 < 중앙개발 SBC(사내방송)PD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