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씨는 밤이 되면 온몸에 열이 더 나면서 눈앞에 헛것들이 보이기도
하였다.

그 헛것들은 주로 퇴락해가는 대관원의 풍경들을 배경으로 나타나곤
하였다.

특히 며느리 진가경이 머리를 풀어헤친 모습으로 서내각문 바로 뒤에
있는 적취정같은 정자에서 걸어나올 때는 우씨의 사지가 가위에 눌린듯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우씨의 병이 심해지자 남편 가진이 용하다는 의원을 불러 진맥을 해보게
하였다.

의원이 문발을 사이에 두고 우씨의 손목 맥박을 짚어보고 나서 가진에게
말했다.

"처음에는 감기 기운으로 몸이 아팠는데 몸의 탁기가 이제는 족양명위경맥
에까지 미치어 헛것들을 보고 헛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병은 무엇보다 대변을 잘 보면 낫게 되는 법인데 약 두첩정도
먹으면 차도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의원이 지어준 약을 먹어보았으나
우씨의 병은 점점 더 위중해지기만 했다.

가진이 아들 가용을 불러 우씨의 병에 대해 의논하였다.

가용은 어머니 우씨의 병은 대관원의 귀신들과 신접한 결과로 생긴
것이므로 약으로 다스릴 게 아니라 점쟁이를 청하여다가 일단 점을 쳐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의하였다.

그리하여 가진은 가용이 추천해준 모반선이라는 점쟁이를 불러다가 점을
치게 하였다.

모반선은 주역을 기초로 점을 치는 점쟁이로 점통에다가 서죽대신
동전들을 넣어 흔들다가 쏟아부어 괘를 짚어내었다.

"백화과라는 점괘가 나왔습니다.

혼백이 놀라면 힘을 잃고 스러지게 마련이라 하여 백화라고 합니다.

마님의 병은 옛집에서 저녁 나절에 혼백이 놀라 얻은 것인데 시체위에
엎드려 있는 백호 귀신에 씌워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백화혼귀라는 괘도 나왔으므로 혼백이 놀라 나갔다가 다시
돌아올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마님의 병이 나아감에 따라 다른 식구들이 병이 들 수도 있습니다"

가진은 모반선의 점괘를 듣고 나서 가용과 하인들과 함께 대관원으로
가서 과연 백호 귀신이 있나 찾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기도 전에 가진마저 앓아 눕고 말았다.

곧이어 가용도 앓아 눕자 대관원에 귀신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장안에
파다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가진의 아버지 가사는 그런 소문을 믿고 싶지 않았지만 집안에 변고가
끊이지 않으므로 하인들을 데리고 직접 대관원으로 가서 귀신의 존재를
확인해보았다.

그날따라 대관원은 더욱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듯하였다.

가사가 조심조심 앞서 걸어가는데 갑자기 뒤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으악, 귀신이다! 노란 얼굴에 빨간 수염을 달고 푸른 옷을 입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