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녀는 자기 손이 거의 보옥의 손등을 덮고 있는 것을 보고는 얼른
손을 옮기며 대답했다.

"전 소홍이라고 해요.

뒤뜰에 있다가 막 뒷문으로 들어오던 참이었어요.

놀라게 했으면 정말 죄송해요"

두 눈을 아래로 살며시 깔면서 답하는 품이 보통 시녀들 같지 않고
제법 의젓하고 단정한 구석이 있었다.

보옥이 소홍이 따라주는 찻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가며 소홍의 아래
위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옷은 좀 낡은 편이었으나 윤기가 도는 까만 머리와 말쑥한 얼굴,
날렵하게 생긴 자그마한 몸매들이 보옥의 마음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너같이 예쁜 아이를 왜 내가 아직 몰랐을까?"

"저는 도련님 눈에 띄는 일은 한번도 해보지 못한 걸요.

늘 땔감이나 날라오고 뒤뜰 청소나 해온 걸요"

소홍의 두 뺨이 발그레해졌다.

"앞으로는 찻물 따르는 일도 하려무나"

보옥이 또 한잔 더 달라고 찻잔을 소홍 앞으로 내밀었다.

그때 추문과 벽흔 두 시녀가 더운 목욕물이 가득 담긴 나무 물통을
마주 들고 낑낑거리며 부엌으로 들어서다가 보옥과 소홍이 서로 붙어
있다시피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주춤하였다.

보옥이 목욕을 하기 위해 옷을 벗을 즈음, 세 시녀들은 부엌을 나가
뒷문을 닫았다.

"너, 도련님이랑 부엌에서 무슨 짓을 했어?"

뒤뜰에서 추문과 벽흔이 소홍에게 따지자 소홍은 울상이 되어 변명을
하느라고 진땀을 흘렸다.

마침내 대관원에 나무 심는 공사가 시작되어 가운이 희봉에게 준 뇌물
덕분에 그 일을 맡게 되었다.

그래서 가운은 인부들과 대관원 출입을 자주 해야만 하였다.

가운이 인물이 출중한 편이었으므로 자연히 대관원에 있는 시녀들
사이에 그에 관한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특히 보옥의 시녀들인 추문과 벽흔이 열을 올렸는데, 소홍이 옆에서
가만히 들어보니 소홍이 배명을 찾아갔다가 기하재에서 만난 그 사람이
가운임에 틀림 없었다.

그때 기하재에 있는 사람이 배명인 줄 알고 오빠라고 잘못 부르고는
혼비백산하여 달아나지 않았던가.

하루는 소홍이 한번 본 가운의 얼굴을 머리 속으로 그려보며 자기
방에서 잠시 졸고 있는데,창밖에서 나직이 부르는 소리가 났다.

"소홍이, 네가 떨어뜨린 손수건을 주워가지고 왔어"

소홍이 벌떡 일어나 나가보니 거기에 가운이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소홍은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두근거려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자 가운이 소홍의 손을 덥석 잡았다.

소홍이 하도 부끄러워 손을 빼고 도망을 치려다가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넘어지면서 소홍은 잠에서 깨어났다.

졸면서 꿈을 꾸었던 것이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