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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금융시대는 더이상 미래형이 아니다.

이제 현재형이다.

이는 은행들의 준비상황을 보면 금방 알수 있다.

아직 초보적이긴 하지만 IC카드가 이미 선보였다.

현금자동입출금기(ATM)와 현금자동지급기(CD)등 자동화기기와 무인점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PC뱅킹이나 폰뱅킹의 기능도 다양화되고 있다.

변화의 중심에는 항상 변화를 선도하는 주도세력이 있게 마련이다.

전자금융시대를 미리 예견한 은행들의 선도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이런
변화가 가능했다.

IC카드를 독자 개발, 실용화단계에 들어선 동남은행(전자지갑)과
서울은행(토비카드) 주택은행(IC카드)이 그들이다.

1~2년사이에 무인점포를 200여개 늘린 신한은행도 빼놓을 수 없다.

지방은행이라는 열악한 환경을 딛고 폰뱅킹이라는 새로운 금융거래를
정착시킨 대구은행도 주인공이다.

폰뱅킹과 PC뱅킹을 단일화한 한미은행과 도비콤이란 독특한
통신에뮬레이터를 개발, PC뱅킹의 수준을 한차원 높인 평화은행도
전자금융시대를 선도하는 주역이다.

아울러 미래의 은행인 가상은행( Virtual Banking )을 현실화하기위해
착실한 준비를 하고 있는 외환은행과 한일은행 장기신용은행도 국내의
금융산업을 앞장서 이끌고 있는 주역임에 틀림없다.

이런 은행들이 있기에 국내 금융산업의 미래는 밝다.

금융시장의 개방화가 가속돼 아무리 외국은행들이 몰려와도 국내은행들이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점칠수 있는 것도 이들 은행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 은행은 올들어서도 전자금융팀을 별도로 설립하는등 전자금융시대를
앞당기기 위해 애쓰고 있다.

국내에 전자금융시대를 앞당기고 금융거래방식을 송두리째 바꾼다는
야심찬 계획을 착착 진행하고 있는 주요 은행들의 준비상황을 살펴본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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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은행은 전자금융시대의 총아로 떠오른 전자지갑(첨단 IC카드)을
국내최초로 개발, 상용화시키는 등 전자금융시대를 선도하고 있다.

이 은행이 지난 94년11월 선보인 전자지갑은 겉으로 보기엔 일반
신용카드와 똑같으나 기능은 "백화점"이다.

플라스틱 카드에 최첨단 종합기능을 하는 IC칩이 붙어있기 때문이다.

이 카드엔 고객의 예금계좌를 통해 현금이 전자적으로 입금된다.

고객이 가맹점에서 물품구입이나 용역제공을 받은 뒤 현금대신 대금을
결제하는 기능과 현금카드 신용카드 기능외에도 신분증 학생증 출입증
고객관리기능 등을 부가적으로 하는게 특징이다.

이 전자지갑은 현금위주의 화폐유통관리를 대신할수 있는 전혀 새로운
전자화폐를 실현시키는 출발점이 됐다.

위.변조를 할수 없어 고객의 비밀과 안전을 완전보장하는 것도 장점이다.

이 은행은 올해안에 텔레뱅킹을 개발, 이달부터 PC가 없는 손님들도
전화기기를 이용해 동남은행을 자기 개인금고처럼 이용하도록 전자금융
서비스를 확대한다.

동남은행이 전자금융시대를 선도할수 있었던 것은 설립초부터 급격한
금융환경 변화를 인식, 적극적으로 이에 대비했기 때문이다.

총량증대위주의 경영을 탈피하고 펌뱅킹 홈뱅킹 텔레뱅킹 및 IC카드 등
전산망을 이용한 전자금융 정보서비스 개발에 주력했었다.

이런 과정에서 지난 91년9월부터 펌뱅킹망인 TOPLINE을 개발했으나
이용고객이 적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92년4월부터 송금기능 중심의 종합정보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제2의 TOPLINE을 개발, 작년 9월말 현재 2,400여 고객이 이용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94년10월 다른 은행에서 발생했던 해커침입 사건이후 동남은행은
해커침입을 완벽하게 막을수 있는 신모델까지 개발했다.

동남은행은 고액의 PC단말기에서 50가지 이상의 은행업무를 처리할수
있도록 하는 전자은행의 확대를 통해 점포망 열세와 고객의 지역적인
한계를 극복했다.

이 은행은 또 백화점 대형유통업체 공공기관및 기업체등과 제휴시스템을
확대, 앞으로도 전자금융문화를 선도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