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동안 금융자율화와 금융시장의 개방이 빠른 진척을 보이면서
우리나라의 금융산업은 이제 시장중심의 경쟁체제로 그 틀을 잡아가고 있다.

지난 7월24일 제3단계의 3차 금리자유화 조치로 금리자유화가 마무리 단계
에 들어갔고 규제완화와 더불어 금융기관의 자산운용도 자유로워지고 있으며
증권산업개편을 포함하여 금융권간 업무영역의 전반적인 재조정이 추진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은행간,그리고 은행과 비은행간의 금리 상품및 서비스 면에서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으며 앞으로 금융시장 개방폭이 넓어짐에 따라 외국
금융기관들과의 경쟁 또한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이처럼 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우리나라 은행들은 급변하고 있는 대내외
금융환경에 적응할수 있는 새로운 경영전략수립에 고심하고 있다.

다만 한가지 특이하고 우려되는 현상은 모든 은행들이 동일한 전략을 추구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일정한 고객 상품 업무영역 등에 특화하여 은행간 차별화를 추구하거나
틈새시장에 전문화하기 보다는 크고 작은 은행 가릴것 없이 모두가 대형종합
(겸업)은행으로의 성장을 목표로 삼고 수신고 경쟁에 총력을 집중하고 있다.

은행들의 대형화를 위한 수신경쟁으로 결국 여러 유형의 가격파괴 상품이
나타나는등 수신금리가 오르고 있다.

은행들의 수신금리 경쟁은 여신금리의 인상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그 결과
자본시장에 접근할수 있는 우량고객이 은행을 떠나게 되어 신용위험이
높아지고 궁극적으로는 은행의 수지악화, 더 나아가서 부실화 마저도 예상
된다.

현재 우리나라 은행들은 자산규모가 너무 작아 국제경쟁력을 확보할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개별 은행들의 입장에서 볼때 대형화는 너무나도 당연한 전략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일 모든 은행들이 규모확대를 동시에 추구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전체 금융시장의 수신규모나 성장속도가 제한된 여건하에서 대형화전략은
궁극적으로는 소수의 대형 은행들이 시장을 장악하는 독과점 구조를 형성
하게 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은행간의 합병.통폐합과 일부 은행의 파산
마저도 예상된다.

그러나 여러가지 법적 제도적인 제약으로 은행간의 자발적인 합병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며 은행의 파산이란 상상도 할수 없다.

결국 경쟁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소수의 은행이 시장을 지배하는 동시에
부실한 은행은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어려운 상황이 예상된다.

또한 정부의 입장에서는 금융의 공공성을 고려해 볼 때 은행산업의
독과점화를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결국 정부는 재규제를 통해 은행의 여수신업무를 통제하는등 간여의 범위를
확대하게 된다.

외국의 경험에 의하면 자유방임적인 금융의 자율화는 정부의 재규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 정부의 재규제를 피하면서 금융의 자율화를 추진할 수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무엇인가.

그 대안은 바로 은행의 영업전략을 다양화하는 것이다.

우선 개별 은행은 과거및 현재의 영업활동과 은행자체의 경쟁우위 부분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미래의 금융환경변화에 대한 전망을 검토하여 새로운
영업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만일 새로운 경영전략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주저하지 말고 과감히
은행의 성격과 조직을 바꿔야 한다.

도매 은행으로 성공한 미국의 뱅커스 트러스트가 80년대 후반에 소매 은행
으로서의 경쟁력이 없음을 인정하고 업무와 조직을 근본적으로 재편한
리엔지니어링의 노력은 본받을 만한 사례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은행들은 겸업의 대형화 전략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대형화를 추구하면서도 전문화할 수 있고 소형은행으로 남아 있으면서
지역에 밀착하는 겸업은행으로서 경쟁력을 강화할수 있다.

대형화전략은 제한된 업종내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함으로써 비용면의
우위를 추구하는 전문형 대형화전략과 복수업종간의 시너지 효과를 노리는
겸업형 대형화전략으로 구분된다.

시중 및 특수은행의 일부중 소매 또는 도매 은행업무에 특화한 은행들은
전자를, 그리고 소매 도매및 유가증권 업무 등을 모두 취급하고자 하는
은행들은 후자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지방은행,일부 특수은행및 일부 후발 은행들은 소형은행으로 남을 수
있는데 이들은 고객 또는 업종에 특화하는 전문화전략을 선택하든가 지역
고객을 대상으로 종합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역밀착형 은행으로 발전할 수
있다.

여러 은행들이 각각의 영업전망과 비용 등을 고려하여 적절한 전략을
선택할 경우 은행산업은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은행들은 무엇이든 스스로가 선택한 전략을 추진함에 있어
끊임없는 경영혁신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

특히 향후 급변하는 금융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해 나가기 위해서는 조직및
위험관리 시스템에서의 신축성 유지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전문화 겸업화된 크고 작은 은행이 안정된 질서를 유지하는
은행산업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