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은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인정을 받는 몇 안되는 산업중 하나이다.

철강산업에 관한한 한국은 "강대국" 대접을 받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철강의 위상은 중국과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미얀마등 동남아국가들이
한국철강업체의 유치에 혈안이 돼있다는 점이나 포철회장인 김만제철강협회
회장이 작년10월 전세계 철강업자들의 모임인 국제철강협회(IISI)부회장에
선임됐다는 사실에서 분명히 확인된다.

국제철강협회 회장 부회장등 회장단은 그동안 미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의
철강기업인들이 독점해온 자리.

개도국 철강기업인으로서는 김만제회장이 전무후무하게 회장단에 들어갔다.

한국철강의 위상이 이처럼 높아진 것은 우선 생산량에서 전세계를 통털어
열손가락안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내 조강생산은 3,374만5,000t.

세계6위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개별업체로서는 포철이 2,212만t의 조강을 생산해 일본의 신일본제철에
이어 2위에 랭크돼있다.

299만t의 인천제철과 228만t의 동국제강도 각각 61위와 84위에 올라있다.

인천제철의 경우 철강업체 전체순위에서는 비록 50위권밖에 있으나 전기로
업체로만 따지면 세계5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전기로가 국내에 선을 보인지 32년 밖에 되지 않았고 일관제철의 역사 또한
27년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말그대로 눈부신 성장이다.

조강생산을 하지못해 전쟁터(월남)에서까지 쇳덩어리(탄피)를 몰래 주워
와야 했던 지난날의 경험과 세계7위의 철강수출국으로 부상한 지금을 비교
하면 격세지감이 들 정도다.

비단 생산규모 뿐만이 아니다.

철근 형강 핫코일 냉연코일 중후판등 보통강부문에서는 품질도 이미 세계
최고수준에 근접해있다.

이는 GM 닛산 혼다 미쓰비시등 미국과 일본의 자동차메이커들이 한국산
냉연강판을 사용키로 했다는 사실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자동차용 냉연강판은 보통강중에서는 최고의 품질을 요구하는 제품으로
이들 자동차메이커들은 품질문제와 자국철강업체의 자존심을 고려해 그동안
자국산 냉연강판만을 고집해 왔었다.

인천제철의 H빔이 철옹성으로 불리는 일본시장을 뚫은 것이나 고려제강의
와이어로프가 미국에서 외국업체중 최고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사례다.

가격경쟁력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미국의 세계적 철강전문연구기관인 WSD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산 냉연강판의
t당 제조원가는 458달러(94년기준).

660달러선인 일본과 독일은 물론 미국의 514달러보다도 50달러이상 낮다.

원자재를 효율적으로 조달하는데다 노무비가 이들 국가의 절반이하 수준
으로 적게 들기 때문인데 엔고가 계속되고 있어 대일가격경쟁력은 더욱더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기술등 비가격경쟁력이 떨어지고 제품구조도 취약하다.

제품구조의 고도화지표중 하나인 특수강비율을 보면 조강기준 9.1%(94년
기준)로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18.4%에 달하는 일본은 말할 것도 없이 독일의 15.9%(93년) 이탈리아의
13.6%(93년) 보다도 훨씬 낮은 수준이다.

특수강 수요가 상대적으로 적은 국내산업구조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수요가
있어도 생산을 하지 못하는 제품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통상산업부는 특수강중 탄소강기술은 일본과 같은 수준에 올라 있으나
공구강과 특수용도강은 월등한 열세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기술도 그동안 많이 따라잡기는 했으나 여전히 선진국에 한두발 뒤져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포철산하 산업과학기술연구소분석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철강기술은 일본
등에 5년여 처져 있다는 것이다.

세계랭킹 2위의 철강업체인 포철까지도 기술을 일부 도입해야 하는 상황
이다.

포철은 유기피복강판설비를 들여놓으면서 신일철로부터 관련기술을 빌려
왔다.

2000년까지는 "꿈의 제철법"이라는 파이넥스법이나 스트립캐스팅기술을
개발해 기술에서도 선진국과 동등한 수준에 올라선다는게 국내철강업계의
목표이나 미국과 일본도 민.관합동으로 다이오스법등 그에못지 않은 용융
환원제철기술을 개발중이어서 목표달성여부는 미지수다.

일본의 55%에 불과한 연구개발투자비를 늘리지 않고서는 선진국을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국내기계산업의 낙후로 핵심설비를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도 문제다.

남이 만들어 놓은 설비를 사다쓰는 업체가 어떻게 필요설비를 직접 제작해
사용하는 선진국업체와 경쟁하겠는가.

동부제강등과 그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설비의 상당부분을 자체제작하고
더 나아가 일부 설비를 수출하는 경우도 있으나 핵심설비는 50%이상을 일본
이나 독일등으로부터 수입해야 하는게 국내철강설비산업의 현주소다.

따라서 한국철강이 명실상부한 세계최고수준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무엇
보다도 먼저 연구개발투자를 늘려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를 좁히고 이를 통해
제품구조를 고도화해야 한다.

특히 단순기술제품의 비중이 높은 전기로와 강관업체의 경우엔 저임을
바탕으로한 중국과 동남아 후발개도국의 추격에 대비해 서둘러 제품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함께 쌍둥이 전기로까지 제작 수출하는 신일철과 같이 철강제품 뿐만
아니라 설비를 함께 수출할수 있도록 기계업체와의 공동연구등을 통해 핵심
설비를 국산화하고 생산강종류와 제품의 규격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철강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