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2년1월 시행된 국내주식시장개방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증시개방으로 우리주식시장이 장기침체에서 벗어나고 내재가치중심의
투자패턴이 정착되면서 시장이 질적으로 개선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증시관계자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우리주식시장은 지난 89년4월부터 92년이전까지 내리막길만을 걸었다.
92년 시장이 열리자마자 외국인들은 가장 적극적인 매수세력으로 등장해
시장의 동면을 깨우기 시작했다.

대우경제연구소 심근섭전무는 "당시 국내투자자들이 선뜻 매수판단을
못해 망설일 때 이들이 대규모 주식매입에 나서 주가상승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이에따라 우리증시는 대세하락 3년6개월만인 92년8월부터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92년 21억5천8백만달러,93년 41억4천1백만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순유입자금이 증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외국인투자자들이 이끄는 상승장세는 내재가치중심의 주가재편이란
형태로 이뤄졌다. "저PER혁명"이 그 시초였다.

주당순이익규모보다 주가가 낮은 태광산업 이동통신 백양등의 저PER
(주가수익비율)주들이 외국인들의 집중매수로 몇달만에 3~5배이상의
주가상승세를 보인 것이다.

또 그동안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던 PBR(주가순자산비율)PCR(주가현금
흐름비율)등의 다른 내재가치관련 투자지표들도 급속히 위력적인 지표로
자리잡았다.

이에따라 92년 시장개방이전까지 투자자들을 사로잡던 큰손=작전=
해당종목주가상승이란 도식은 시장에서 적잖이 힘을 잃었다.

주식값이 기업의 내재가치중심으로 재편되자 동일업종안에서도 기업
내용이 좋은 한두 종목만이 오르는 주가차별화현상이 가속화됐다.
종전의 업종동조화현상이 사라진 것이다.

외국인들의 장기적 투자패턴의 학습과 증시의 기관화현상으로 시장의
안정성이 높아진 점도 증시개방의 중요한 성과이다.

개방이후 시장의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일반투자자의 거래비중이
줄어들면서 외국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기관투자가들의 비중이 높아진
것이다.

또 외국인투자자들이 대부분 우량주에 장기투자함으로써 단타매매에
익숙한 국내투자자에게 장기투자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한편 개방 자체도 우리증시의 국제화란 점에서 하나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진입장벽속에서 보호받던 국내증권산업에 외국증권사등 경쟁자들이
나타나면서 선진투자기법의 개발, 신금융상품개발등 증권산업의 대외경쟁력
을 높이는 노력이 빨라졌다.

그러나 증시개방으로 인한 문제점도 적지 않았다.

외국인자금의 유입으로 인한 통화관리상의 어려움이 컸다. 외화자금의
급속한 유입으로 국내통화가 불어나 물가불안을 야기하고 환율을 교란
시키는 경우가 생겨났다. 최근 통화당국이 시중자금을 죄는 것도 올해말
께의 한도확대로 인한 통화팽창에 대비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우리증시가 본격적인 대세상승을 타게 되면 그동안 두드러지지 않았던
핫머니의 유출입도 커지면서 통화당국을 괴롭힐 것으로 보인다.

또 증시개방의 필연적 산물이지만 주가상승에 따른 우리 국부의 유출
문제도 지적된다. 저PER주혁명의 강한 인상때문에 외국인매입주식을
국내투자자들이 뇌동매매함으로써 외국인들은 적잖은 투자이익을 안았다.

이같은 현상은 국내증권사들이 외국인투자자들의 주문을 차지하기 위해
기업분석자료나 중요정보를 경쟁적으로 제공함에 따라 가속화됐다.

아직 별다른 움직임은 없지만 외국인투자한도의 추가확대가 앞으로
잇따르게 되면 우리기업의 경영권보호문제도 불거질 소지가 충분하다.

고려대 남상구 교수는 "오는 96년부터 국내기업 주식소유한도가 철폐되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주식투자를 통해 얼마든지 경영권을 넘볼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증시개방을 다루는 정부당국의 자세가 국제화시대에 걸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가 외국인주식투자한도 추가확대를 지렛대로해 주식시장
에 개입함으로써 시장의 자율기능을 해쳤다는 혐의를 받을 만한 사례가
적지않다는 주장이다.

증시관계자들은 주식시장의 지속적인 추가개방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고
증시개방의 과보다 공이 많은 것으로 판명된 이상 앞으로 있을 추가개방을
증권산업의 대외경쟁력강화와 금융국제화의 계기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진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