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소공화국을 수립하자,에노모토 총재는 하코다테에 있는 서양 여러나라
공관에 정식으로 공문을 보내어 국가승인을 요청했다.

먼저 국제적인 지지를 획득하고나서 그 힘을 배경으로 하여 교토의
유신정부에 탄원형식의 승인 요청을 하면 효과적이리라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에노모토의 그 계산은 빗나갔다. 어느 한 나라의 공관에서도
반가운 회답이 오지 않았다. 대체로 모두가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아직 국가로서 승인할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듯 교토의 신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 지켜본 다음 그 문제에 대한 정식 회답을 하겠다는
식이었다. 그러니까 먼저 신정부의 승인을 받는게 순서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좋은 회답을 주리라고 기대했던 네덜란드와 프랑스도 그런 태도
였는데, 일단 본국에 사실을 보고는 하겠다는 약간의 호의를 꼬리에
달았다. 러시아는 아예 "니에트"(안된다)였다. 일본땅에 두개의 정부가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에노모토는 도리가 없어서 먼저 교토의 유신정부 앞으로 탄원서를 제출
하여 양해를 구하기로 계획을 바꾸었다. 그리고 탄원서를 자기네가 제출
하는 것보다 서양 공사를 통해서 제출하는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
같아 그 일을 프랑스 영사에게 부탁했다. 프랑스 영사는 그 일은 쾌히
응낙했다.

그러나 프랑스 영사는 그 탄원서를 자기네 단독으로 신정부에 제출하기가
좀 난처해서 영국측에 부탁하여 같이 전달하기로 했다.

자기네는 은밀히 막부측을 지원해 왔으니, 신정부측을 지원해온 영국이
끼여들면 일이 자연스러울 것 같았던 것이다.

영국 영사도 선뜻 응하여 탄원서는 두 나라의 요코하마주재 공사를
통해서 신정부에 제출되었다.

사이고와 오쿠보가 그 탄원서를 접수했는데, 내용을 검토해 보고나서
즉석에서 두 공사에게 오쿠보가 구두로 회답을 했다.

"두 공사께서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에노모토는 이미 없어진 막부를
끝까지 추종하는 자요. 그자가 잔당을 이끌고 홋카이도로 가서 그곳에
자칭 에소공화국이라는 정권을 세운 모양인데, 그것은 국가에 대한
반역행위가 아닐 수 없어요.

그런 반역자를 용인하다니 말이 되지가 않아요. 우리 유신정부는
불원간에 엄한 조치를 내릴 작정이오"

두 공사는 아무 말이 없었고, 분위기는 무거웠다.

오쿠보는 영국 공사인 퍼크스를 향해 살짝 미소를 지으며 사담을 하듯
말했다.

"퍼크스 공사님, 앞으로 이런 중재에는 나서지 마시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