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은 한국사연구의 기본사료의 하나로 우리 민족문화의
금자탑이라 부를 만한 사서이다. 조선조 태조로부터 철종에 이르기까지
25대 4백72년간의 실록원본 1천8백88권 8백88책이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돼 있다. 세게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수 없는 방대한 양이다.

우리나라는 고려시대부터 춘추관을 상설, 사관을 두어 날마다 시정을
기록한뒤 임금이 죽으면 그 시대의 역사를 편찬해 특별히 설치한 사고에
보관시켰다. 사관이 직필한 사초는 사관외에는 아무도 볼수 없도록 했고
그 내용을 누설하는 사관은 중죄에 처하는 법도 마련돼 있었다.

무오사화를 일으켰던 폭군 연산도 신하들의 반대로 직접 김일손의 사초를
보았던 것은 아니고 세조를 비방한 관계기사만 초출해 보았을 뿐이다. 실록
의 편찬이 끝나면 사초는 조지서가 있었던 자하문밖 차일암 개천에서 모두
물에 풀어 없애버렸다. 이것을 세초라고 했다. 이런 사실들은 실록이
얼마나 신중하게 편찬됐고 그 내용도 야사와는 비교할수 없는 가치가 있다
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한때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은 조선조보다 고구려 신라 백제가 더 높은
문화수준을 가졌던 나라로 잘못 인식했던 때가 있었다. 사학자들조차
고대사쪽으로만 몰렸던 적도 있다. 그러나 조선조만큼 한 국가로서 안정
됐던 나라는 없었다. 한반도를 완전히 통치했던 나라는 조선조 뿐이다.

민족문화추진회와 세종대왕기념서업회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추진해오던
조선왕조실록 1,707권의 내용이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으면서 모두 413권
으로 완역, 출간됐다. 68년 착수한 이래 26년에 걸쳐 52억원의 예산과
연인원 2,500명의 전문가가 동원된 대역사였다. 오는 25일 완역기념 학술
대회도 갖을 예정이다.

물론 완역된 우리의 "조선왕조실록이 내용이 어렵고 오역이 많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반대로 지난91년 완역된 북한의 "리조실록"은 일반인들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전문용어까지 쉽게 풀어놓기는 했으나 오히려 장황하고
주석과 색인이 없다는 결점이 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국역 남북실록에 대한 솔직하고 철저한 비교분석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아울러 조선왕조실록 완역이 한국인 모두가 조선조에
대한 인식을 전환시킬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