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대학의 박모군(25.사회학과)은 며칠전 선후배간 주먹다짐 직전까지
갈정도로 심각한 추천서 홍역을 앓았다. 정해진 추천서 배분순서를
무시하고 과동기 5명이 L그룹 추천서를 나눠가진 것이다. 모두가
취직문제로 신경이예민해 있던터라 언성을 높여가며 심하게 다투었다.
이렇게 "순서 "를 무시,우정까지 뒷전으로 미뤄가며 추천서를 가져간
5명중에 서류전형을 통과한 사람은 두명. 그나마 합격한 사람은 한명에
불과했다.

S대학 신문방송학과에서는 지난 9월 졸업예정자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제비뽑기를 통해 추천서 배분 순서를 정했다. 취업담당조교는 철저히
순서에따라 추천서를 줬다. 지난해 모방송국 추천서를 둘러싸고 동기간
얼굴을 붉혀가며 쟁탈전을 벌였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중
합격한 사람은 전무였다.

추천공채. 요 몇년새 대학가에 새로 등장한 취업용어이다. 입사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주는 추천을 일컫는 말이다. 공채와는 별도로 대학마다
몇장씩 특별히 돌린다는 점에서는 "추천"이지만 이 추천을 받은 사람들끼리
5대1,심한 경우 수십대1의 경쟁속에서 다시 입사시험을 치른다는 점에서는
"공채"나 다름없다. 입사시험에 수천,수만명씩 몰려들자 응시자격을 아예
이런식으로 제한해 버린 것이다.

내년도 졸업예정자는 15만여명. 지난 85년부터 누적된 취업 재수생
20만여명을 합치면 35만여명의 대졸자들이 인력시장에 "상품"으로
나와있는 셈이다. 그러나 일자리는 대기업 1만6천여명,중소기업
4만1천여명,교직 공무원 외국인회사등 기타 2만9천여명등 총
8만6천여명에 불과하다. 네명중 한명은 실업자신세가 될수 밖에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추천서의 절반은 이공계열의 학생을 원하는 것입니다. 나머지
절반중에 30~40%가 상경계및 자연계니까 인문.사회계열 졸업생들은
정말 갈데가 없는 형편이지요"
건국대 취업상담실의 전대일씨는 순수 인문.사회계열중에는 아직
추천서가 한장도 돌아가지 않은 학과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느끼는
체감취업난은 산술적인 경쟁률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심각한 형편이다.

더욱이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상당부분을 추천공채를 통해 뽑기 때문에
순수 공채를 통해 취직한다는 것은 말그대로 "하늘의 별따기"이다.

얼마전 추천공채를 통해 H그룹에 지원했던 S대 이모군(27.경영학과)은
면접생 거의 전부가 손꼽히는 명문대 출신이라는 점에 놀랐다. 명문대
출신 대졸자는 전체의 10%도 안된다는 이 그룹 김모선배의 말과는
영딴판이었다. 더욱 놀란것은 대부분의 신입사원이 이런식의 추천공채로
채워진다는 점이었다.

"면접때 물어봤더니 이런식의 추천공채를 통해 뽑는 인원이
1천5백~6백여명이라고 하더군요"
H그룹에서 밝힌 올해 신입사원 채용인원은 총 2천75명. 주요대학
졸업생중에서 뽑는 추천공채인원과 이에앞서 완전시험면제로 뽑는
특채인원을 제외하면 순수공채는 겨우 5백여명.

공식적인 통계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내달7일 치러지는 다른 대기업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공채시험은 그야말로 말뿐인 형식적인 공채라는 얘기다.

"하루 60~70명이 이곳을 찾아옵니다. 지난해 같으면 거들떠 보지도 않던
기업체의 추천서가 올해는 오히려 없어서 못줄 지경 입니다. 서울대의
취업담당자 장인씨의 얘기다.

Y대 경제학과에서 내년2월 석사학위를 받게되는 김모군(26). 김군은
재작년 대학을 졸업하면서 대학원 진학을 결정했지만 지금은 몹시 후회하고
있다. 실력을 좀더 쌓을 요량으로 대학원에 갔지만 그 "덕분"에 취직조차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2년전만해도 명문대 상대졸업에 평점 3.4라는
김군의 조건이면 금융업계 입사는 일도 아니었다.

"거들떠 보지도 않던 제조업체의 입사원서마저 구하기 힘들어졌다"는
김군의 푸념속에서 올 취업전선의 분위기가 최악의 전쟁상태로 치닫고
있음을 엿보게 했다.

<노혜령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