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금융실명거래제가 실시된지 1주일이 되었다. 시행여부를 둘러싸고
오랫동안 논란이 계속되었지만 예상보다 빨리 기습적으로 새행된 탓에
자금까지도 금융시장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다. 시행시기나
방법에 대한 시비가 없지않으나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가운데 우리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큰 부작용 없이 실명제를
성공시키느냐에 쏠릴 수 밖에 없다.

우리경제가 선진경제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금융실명거래제의 실시가
바람직하며 이를 통해 자금흐름의 왜곡과 불확실성을 제거함으로써
경제정책의 효율성을 높이고 동시에 공평과세를 통한 경제정의의 실현을
꾀할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이름을 밝히기를 꺼리는 거액의
자금이 금융시장을 벗어날수 있고 자금흐름이 경색됨에 따라 중소기업의
자금난과 연쇄부도가 우려되며 시중금리의 상승, 자금의 해외유출등도
있을수 있다.

따라서 금융실명제의 성패는 얼굴없는 돈에 대한 공평과세와 돈의 흐름을
생산부문으로 유도하는 두가지 과제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는 기술적인
문제로 집약된다.

이같은 관점에서 볼때 단기적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돈의 흐름을
정상화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하며 공평과세를 위한 자금출처조사와
세금추징은 실명제의 근간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최소화되어야 할것이다.

예를들어 3,000만원 이상의 예금인출자 명단을 국세청에 통보한다거나
5,000만원이상의 비실명예금에 대해 자금출처를 조사한다는 당초의 기준은
우리경제의 규모를 생각할때 너무 비현실적이다. 현재의 국세청인력과
전산시설로는 어차피 조사대상 모두를 조사할수 없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금융거래의 실명화, 금융자산에 대한 종합과세, 주식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등 단계실시에 대한 취지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돈이 굴러가는 현장인 금융시장의 사정은 어떠한가. 걱정했던
은행에서의 현금인출사태도 일어나지 않고 폭락세를 보였던 주가도
이틀만에 반등세를 보이는등 언뜻 보아서는 별로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가명계좌의 실명화시한이 2개월인 점을 생각할때 지금의 안정적인
움직임은 "태풍을 앞둔 고요"에 비유될수 있다.

과거 치열한 수신경쟁에서 차명계좌를 통해 끌어들인 거액예금의
처리문제를 둘러싸고 은행원과 예금주들 사이에 암중모색이 치열하다.
최근 동아투금에서 일어난 거액예금의 소액계좌분할 및 인출시기조작
사건은 이같은 고민을 극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최악의 경우 벌금을
물고라도 위법적인 예금인출사태가 없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이같은
사태는 금융실명제의 성공에 큰 장애물이 될수 있기 때문에 금융기관
임직원의 적극적인 협조를 끌어내기 위해 면책범위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본다.

아울러 금융기관의 자금조달에 큰 역할을 해온 양도성 예금증서(CD)를
포함하여 일체의 채권거래가 끊기다시피 되어 가뜩이나 어려운 금융기관의
자금사정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채권시장의 대외개방이 임박한 지금
이번 기회에 채권의 발행시장과 유통시장을 정비해야 하며 비실명자금의
생산적인 투자를 유도하고 주택건설 및 사회간접자본확충을 위해 무기명
장기국공채의 발행을 검토해 볼수있다.

물론 금융실명제의 근본취지에는 어긋나지만 "궁한 쥐는 쫓지 않으며
쫓더라도 도망갈 구멍을 주고 쫓아라"는 옛말대로 더 큰 부작용을 막기위해
생각해 볼수있는 일이다. 또한 장기저리로 발행하고 차등과세할 경우
거액의 금융자산 소유자에 대한 특혜시비도 줄일수 있다.

또한 단기적인 증시안정에 집착한 나머지 기관투자가들을 앞세워 정부가
지나치게 증시에 개입하는 것은 위험함 일이라고 생각된다. 차명계좌를
이용하여 위장분산된 대주주소유의 주식이 매물로 쏟아져 나오면
주가하락을 막기 어려우며 자칫하면 기관투자가들만 발목이 잡히는
89년말의 "12. 12조치"가 되풀이 될수있기 때문이다. 주식양도차익에
대한 종합과세를 신경제계획기간중에 하지 않기로 한 마당에 단기적인
주가움직임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증시의 큰손인 대주주와 외국인투자자의
동향을 주시하며 증시의 제도개선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특히 자본시장개방이 가속화되는 지금 경영권확보를 위해 대주주의
지분비율을 상향조정할 필요가 있으며 과거와 같이 경제안정을 명분으로
정부가 직접 개입하기 보다는 시장자율에 맡겨야 할 당위성이 더욱 커진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사채자금을 제도권으로 흡수하고 금융기관의 자금난을 덜기
위해서도 금리자유화 2단계조치를 반드시 실시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경기도 나쁜데 금리상승의 가능성을 걱정하는 소리도 있으나
금융시장개방과 금융자율화를 위해서는 정면돌파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주사위는 던져졌으며 "가다가 중지곧하면 아니감만 못하다"는 말대로
금융실명제의 성공을 위한 보완책마련에 인색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