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이름으로 은행거래를 하는 것이 이렇게 요란스럽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에 매우 놀랐습니다"
서울에 근무한지 두달됐다는 한 독일은행관계자는 한국의 금융실명제실시
논쟁을 이해할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독일계 은행은 서울에서조차 엄격하기로 유명한 본국의
금융실명거래규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금융실명거래의
당위성을 따져 본적이 없다면서 그렇게 하는게 당연한 것 아니냐는
설명이다. 독일은 미국은 물론 영국 프랑스등 다른 유럽국가들과는 달리
법에 의해 금융실명거래제를 의무화하고있다.

금융실명거래제는 철저한 과세를 목적으로한 조세징수법(Abgabenordung)에
근거하고 있다. 현행규정은 77년부터 개정 시행됐지만 최초 입법은 강력한
신분증명제도가 시행되던 바이마르공화국에 의해 1919년에 만들어졌다.
이법의 위력은 "헌법적 상위법"이라는 독일은행관계자의 설명에서도
알수있다. 74년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법을 어겨 금융거래를 가명으로
할 경우 엄히 처벌받는다는 인식이 심어지면서 오늘날의 독일식
실명거래제도가 정착된 것이다.

독일의 경우는 관행의 형태에 의존하고 있는 미국 영국 프랑스등 주요
선진국들의 금융실명제와는 성격이 다소 다르다. 영국 프랑스는 다른
사회.경제제도가 발전되면서 자연스럽게 금융거래의 실명화가 확립됐다.
가령 영국은 1894년에 제정된 수표거래법에 의해 일찍부터 발달된
수표문화와 함께 실명에 의한 금융거래가 자리잡았다.

이렇게해서 예금주들은 자기이름으로 금융거래하는 것을 당연한 의무로
받아들이게 됐고 은행등 금융기관들은 각종관련법규에 의해 실명확인등에
대한 엄격한 책임을 떠맡고 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국가들은 아랍등의 검은돈을 모았다가 지난 91년
도산한 영국BCCI사건이후 금융실명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검은돈의
유입과 세탁을 막기 위해서다.

독일의 경우 작년에 부당이득조사법을 제정,3만마르크(약1천5백만원)가
넘는 예탁금에 대해서는 돈의 출처를 은행이 확인토록 하고있다. 또
5만마르크(약2천5백만원)가 넘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사실을 알았을 경우
예금을 했든 안했든간에 은행책임자는 감독기관에 신고하고 필요할 경우 그
돈의 출처를 추적하도록 돼있다.

최근 몇년간 마약거래와 연계가 의심되는 태국 방글라데시로부터의
자금유입이 늘고 있어 독일은행들을 긴장시키고 있는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유럽의 금융실명제는 대체로 까다로운 실명확인절차 때문에 금융계좌를
개설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독일은 조세징수법의 가명및 가공의 계좌개설금지조항과 금융기관의
계좌개설전 신원확인의무조항에 근거,예금주의 실명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개인은 원칙적으로 국가기관발행의 유효한 신분증명서를 제시해야 계좌를
틀수 있다. 예외적으로 여권이나 운전면허증으로 신원을 증명할수도 있고
어린이를 위해서는 출생증명서나 족보까지도 원용된다.

기업이나 법인의 경우는 법인등기부등본이나 사업자등록증사본과 함께
이사회결의서한,정관상의 근거규정등이 제출돼야하고 반드시 거래대표자를
명시해야 한다.

은행의 고객계좌관리담당자는 신원확인에 사용된 증서의
종류,발급번호,발급기관및 발급일을 계좌개설신청서에 표기해 보관해야
한다. 잘아는 고객에 대해서는 신분증명서 제출을 생략할수 있으나
관계자는 관련서류에 "개인적으로 잘알고있음"을 기록하고 이에대한 책임을
져야한다.

유명한 연예인이나 작가등은 동일인임을 확인한뒤 관리할수 있는 예명을
사용할수 있다.

또 업무상 다른사람의 금전이나 고가품을 보호할 필요가 있는 공증인이나
변호사등은 자기명의의 특별계좌에 다른사람의 금전등을 관리할수 있도록
돼있다
그러나 이같은 타인계좌는 반드시 실제소유자 (처분권자)의 실명을
확인해야하며 인출할때는 처분권자의 관할 세무서동의를 얻어야 한다.
처분권자가 여러명이면 각각의 관할세무서가 모두 동의해야만 타인계좌의
인출이 가능하다.

독일은 금융거래의 겸업주의(universal banking system)를 채택,은행이
증권업무도 수행하고 있기때문에 유가증권 주식거래는 물론 주식배당금
채권이자의 지급에 대해서도 은행을 통한 실명제가 그대로 적용된다.

은행관계자는 특히 예탁금이 고액이거나 고객의 금융자산이 급격한 변화를
보일때 그 증명을 고객에게 요구할수 있다. 가령 고객이 보유부동산을
매각한 거액의 현금을 예금하려면 부동산 매매증명서등을 제시해야한다.

만약 은행관계자가 이같은 실명거래관리를 소홀히 했을 경우에는
조세위해행위 또는 세금포탈방조행위로 형사책임을 져야한다.

영국의 실명확인은 수표거래법외에 수표발행자 요건을 규정한 수표법
판례등 불문법에 근거하고 있다. 계좌개설때 신청인의 신용도에 대한
기존고객의 추천서가 일반적으로 요구되고 있으며 프랑스의 경우
다른나라와 마찬가지로 각종 증명서등에 의해 본인임을 확인하고 있다.

<이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