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장병용 PX상점에도 요즘 가을을 맞아 대할인판매가
있는모양이다. AFKN라디오 방송아나운서는 어떤 품목은 너무 인기가 있어
새벽 3시에 벌써 장사진을 치고있던 병사들에 의해 물건이 동나버린다고
익살을 떤다. 그의 목소리속에는 소련의 상점앞 줄서기를 청취자에게
연상시키려는 의도가 들어있다.
소련의 상점앞 장사진은 너무나 잘 알려진 소련경제의 실체이자 상집이다.
그것은 공산주의 소련의 실패 그것이기도하다.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페레스트로이카를 들고나온지 6년이 지나도록 상점앞 줄서기는 없어지지
않았다. 이것을 보면 페레스트로이카도 실패했음이 분명하다.
고르바초프의 시련은 여기서 시작된 것이다.
상점앞 줄서기는 물건 부족때문에 생긴것이다. 물건부족은 말할것도 없이
생산부족때문에 생긴다. 소련경제문제전문가들이 요즘 내리고있는 압도적
결론가운데 하나는 공산주의경제의 대환란은 기업가를 없앤데서 생겼다는
것이다. 기업가를 없앴기때문에 필요한 물건을 수요자가 요구하는 수량과
품질에 맞춰 생산할수 없게되었다. 노동자의 노동의욕을 팽팽하게
유지시켜주는것도 기업가다. 적절한 노동보상과 노동환경을 만들어주어
노동의욕을 유지시켜주는것은 기업가의 일이다. 기업가와 노동자의
자발성은 없고 당의 명령과 이 명령에 따르는 기계적 복종만이 있는 경제는
결국 멸망하고 말게된다.
개발도상국에 있어서도 경제발전의 가장 절실한 애로는 기업가와
기업가정신의 부재라고 한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신흥공업국들이
후진국은 영원히 후진국으로 남을수밖에 없다는 "빈곤의 악순환"고리를
끊고 경제개발에 성공하게 된것도 이들나라에 기업가들이 생겨날수
있었음에 그 원인이 있었다고한다.
혹자는 한국의 경제개발은 정부가 주도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본도 그렇고 대만도 그렇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부주도적인 소련경제는
실패했는데 같은 정부주도의 일본경제는 왜 성공했는가? 그 이유는 일본식
정부주도는 기업가를 육성하고 기업가를 북돋워 주는 쪽이었고 소련식
정부주도는 그 반대였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제발전도 기업가에 의해
주도된 것이다. 한국의 역대 정부는 소련정권만큼 어리석지 않았다는 점에
점수를 줄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89년 이후 한국경제에는 위기가 닥치고있다는 상황인식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그 단적인 조짐은 소련의 상점줄서기에 비길수 있는
국제수지적자의 걷잡을수 없는 확대로 나타나고 있다. 외국에 팔만한
물건은 수량도 없고 가격이나 품질은 더더욱 맞춰내지 못한다. 반면
수입은 문자그대로 전혀 분별없이 커지고 있다. 이것을 금년상반기의
일시적인 현상으로 본 한국은행의 예측은 이미 빗나갔고 내년부터 점점
나아져 93년에는 흑자로 돌아설것이라고 보고 있는 상공부장관의 견해는
너무도 근거가 박약하다. 우리나라에서의 국제수지적자 급증은 소련에서의
상점 줄서기와 같이 치명성 경제질환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답은 기업가이다. 첫째로 지금 우리사회는
기업가에게 돌팔매질을 하고 있다. 87년의 6.29에 즈음하여 평등주의가 이
땅에 대두했다. 그 대두는 정당한것이었다. 그러나 잘못된것은
정치세력들이 이것을 간판으로 들고 나온데 있다. 이간판을 더 잘 보이게
하고 더 잘 흔들어대기 위해 기업가를 희생으로 삼기 시작했다. 모든 죄는
기업가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나치정권이 유태인을,모택동정권이 지주를
희생양으로 삼은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러나 기업가를 희생시킨다는것은
경제를 희생시키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 됨을 깨닫지는 못하고있다.
둘째는 기업가 가운데 일부가 기업가 정신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돈장난" (moneygame) 땅투기 유흥서비스업등으로 눈을 돌리고 거기에
정력을 쏟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미국경제학자 베블렌(Thorstein Veblen
1857 1929)은 물건을만든다는 경제의 중핵에서 벗어난 금융적 돈벌이를
비판의 대상으로삼았다.
슘페터는 기업가야말로 경제발전의원동력이라고 분명히 주장했다. 그는
기업가의 역할을 혁신(innovation)이라고 못박았다. 혁신이란 새로운
조합을 엮어내는 것이라고도 했다. 혁신에는 5가지가 있다. 신상품
도입,신제조기술도입,신시장개척,신원료공급원 개척,신산업조직의 발명이
그것이다.
기업가의 이윤이란것은 사회가 그에게 내리는 상이다. 나라 안팎시장이
필요로하는 물건을 경쟁력있게 만들때만 기업가는 성공하여 돈을 벌수
있다. 팔릴수 없는 물건을 만드는 기업이 성공한 예는 우리나라에도 단
한건도 없다. 성공적인 기업가 없이 성공하는 경제는 없다. 지금부터
사회는 기업가를 부추기고 기업가는 스스로 기업가 정신을 부추기자.
그렇게 하여 경제를 다시 혁신시켜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