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제조업 활성화를 위해 기계류 수입에 대한 외화대출을 확대한데
이어 "국산대체 가능여부 확인제도"마저 폐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정부 스스로가 국내 자본재산업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있다.
25일 한국기계공업진흥회 및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기계류의
국산화를 촉진키 위해 운용하고 있는 국산기계 구입자금의 지원규모는
지난해의 1천7백억원에서 올해 1천50억원으로 대폭 축소된데 반해 금리와
대출기간 등 지원조건이 훨씬 유리한 외화대출은 3조6천억원 규모로 크게
확대돼 국내 수요업체들의 외국산 기계류 선호경향을 오히려 부추기는
결과를 빚고 있다는 것이다.
국산기계 구입자금의 금리는 연 11-12% 주준인데 비해 기계류 수입을
위한 외화 대출의 금리는 리보(런던은행간금리)에 1.25%를 더한 8-9%
수준으로 2-3%포인트가 낮은데다 대출기간도 10년으로 국산기계
구입자금의 3-5년에 비해 훨씬 길다.
더욱이 외국산 기계류 수입과정에서 국산가능 시설재의 불필요한
도입을 막고 기계류의 국산화를 지원키 위해 실시돼 온 "국산대체
가능여부 확인제도"마저 통상마찰 해소라는 명분으로 폐지된다면 정부가
외화대출을 통해 지원하려는 첨단산업 설비의 도입 뿐만 아니라 국산대체가
얼마든지 가능한 일반 범용기계류까지 무차별 수입돼 국내 자본재산업의
기반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이들은 지적했다.
"국산대체 가능여부 확인제도"는 정부가 지난 87년 국제수지 흑자의
활용책으로 원화 설비금융보다 유리한 조건의 특별외화대출을 실시하면서
국산가능 시설재의 수입 확대를 방지하기 위해 국내 수요업체가 기계류를
수입할때 기계공업진흥회의 국산대체 가능여부 확인을 거치도록 한
제도이다.
진흥회 관계자들은 지난해 9-12월의 4개월 동안 접수된 기계류
수입신청액수 37억7천7백만달러중 8.6%인 3억2천4백만달러 상당의
시설재가 국산대체 가능한 것으로 판정돼 국산으로 대체를 유도했다고 밝혀
이 제도의 폐지가 가져올 수입증가의 폭이 얼마나 클 것인가를 가늠케
해주고 있다.
특히 국내 제조업체들이 수입을 원하는 기계류가 대부분 국내업계가
아직도 개발단계에 있거나 개발을 했어도 수요업체들의 외국제품 선호로
시장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첨단제품들이어서 이 제도의 폐지로 외국산
기계류의 수입이 크게 늘어날 것은 불을보듯 훤한 형편이다.
또 이렇게 될 경우, 선진외국의 업체들에 비해 기술 및 품질경쟁력에서
뒤지고 있는 국내 기계류 제조업체들은 최근 활기를 띠기 시작한 기술개발
의욕이 꺽여 제품의 개발보다는 차라리 외국제품을 수입.판매하는
자구책을 택할 가능성이 커 국내 자본재산업은 일어나 보지도 못하고
주저앉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이라는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결국 제조업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 정부가 고심끝에 내놓은 대책들이
정책의 기본취지와는 반대로 오히려 국내 제조업의 근간인 자본재산업을
침체시키는 모순을 빚게된다는 논리다.
진흥회 관계자들은 "자본재산업의 역사가 1백년이 넘는 일본과 독일 등
선진국들이 아직도 지원체제를 유지하고 있는데 반해 전자.조선을
포함해도 기계류가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직도 일본의 절반정도인
40%에 머물고 있고 기계류 무역적자가 전체 무역적자를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외국산 자본재의 수입을 촉진하는 조치를 취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불성설"이라고 맹렬히 비난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가 제조업 활성화대책의 효과를 단기간에 보기위해
"제조업의 제조업"인 자본재산업을 희생시키기 보다는 정책의 보다
장기적인 추진으로 이를 더욱 육성해야한다고 역설했다.
따라서 진흥회 관계자들은 정부가 미국의 통상압력 등으로 국산대체
가능여부 확인제도를 폐지할 수 밖에 없다면 국산화된 기계의 국내수요
창출과 기계류의 대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국산기계구입에도 외화대부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정부가 외화대부를 국산기계구입에도 지원할 경우, 통화증발과
물가상승의 요인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물가상승에 미치는
영향은 3년간 1.332%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또 정부가 이같은 요구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국산기계
구입자금과 외화대출의 금리차를 국내업계의 기술개발에 지원하는
방안이라도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 했다.
업계관계자들은 이같은 지적과 함께 최근의 수출부진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 되고 있는 기술경쟁력의 열세가 정부가 그동안 수출실적
위주의 지원행정으로 기술력의 기반이 되는 자본재산업에 대한 지원을
게을리한 결과라는 점을 감안할때 정부가 제조업 활성화를 추진하면서
지난 80년대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