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받아 적고, 외우고…'의심' 못하는 인재는 쓸모없다
교수의 말을 단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받아 적는다. 사소한 농담은 물론 교수의 기침 소리까지도….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이 2014년 인터뷰한 서울대 최우등생(평균 학점 A0 이상) 46명 중 87%가 꼽은 ‘학점 잘 받는 비결’이다. 응답자의 89%는 시험과 과제에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의견을 펼치는 대신 교수의 견해를 따른다고 답했다. 한국 대학에서는 암기에 능하고 순종적인 학생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뜻이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는 《우리의 태도가 과학적일 때》에서 이런 인재상을 ‘한국형 천재’로 규정한 뒤 “한국형 천재가 쓸모 있던 시대는 끝났다”고 단언한다. 과거에는 교과서와 계산기 등을 머릿속에 모두 집어넣고 어떤 질문에든 척척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우수한 인재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는 등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런 능력의 중요성은 급감했다. 대신 수많은 지식과 정보를 모아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힘이 중요해졌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시대에 걸맞은 인재를 어떻게 길러내야 할까. 물리학자인 저자는 ‘과학하는 태도’를 가르쳐야 한다고 제안한다. 역사상 과학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가장 훌륭한 플랫폼이었다. 기존의 지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보다 스스로의 힘으로 치열하게 사고하고, 그 과정을 공동체와 공유하고 협력하는 과학자들의 노력이 이를 가능케 했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과학하는 태도의 두 가지 핵심 요소로 ‘의심’과 ‘초협력’을 꼽는다. 의심이란 남이 정한 것을 무작정 따르는 게 아니라 내 고민과 생각의 결과를 믿으라는 것. 현대 사회의 수많은 불확실성에 대응해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하고, 가짜뉴스와 거짓말에 속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여기서 나온다. 초협력은 소통과 협력의 중요성을 뜻한다. 20세기 이후 가장 빛나는 과학적 성과 대부분이 과학자들의 국경을 뛰어넘은 협력으로 탄생했다.

한국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은 다소 진부하지만 저자가 과학 교육 현장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이 녹아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최신 시사 이슈와 관련한 여러 과학적 개념과 연구방법론 등도 쉽게 소개돼 있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교양서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