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를 '파오차이'로 표기한 네이버 V라이브 웹예능 '달려라 방탄' /사진=반크 제공
'김치'를 '파오차이'로 표기한 네이버 V라이브 웹예능 '달려라 방탄' /사진=반크 제공
"김치의 또 다른 이름이요? 그냥 김치 아닌가요?"

최근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웹예능에서 요리연구가 백종원과 함께 김치를 만들었다. 글로벌 음악시장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는 이들이 모여 김치를 만들다니.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기 충분한 막강한 '김치 홍보'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웬걸, 자막 하나가 뿌듯해하던 네티즌들을 단번에 분노하게 만들었다. 김치가 중국어 자막에서 '파오차이(泡菜)'로 번역된 것이었다. 방탄소년단 팬들은 물론 이를 본 많은 네티즌들은 "김치는 김치일 뿐, 파오차이가 아니다"고 반발하며 시정을 요구했다.

◆ 김치와 파오차이는 같은 음식? 다른 음식?

김치와 파오차이는 전혀 다른 음식이 맞는 걸까? 전문가는 "그렇다"고 답했다.

조정은 세계김치연구소 전략기획본부 본부장은 한경닷컴에 "전 세계에서 원재료를 한 번 절이고 여기에 부재료와 양념을 넣고 저온에서 장기간 숙성·발효해 먹는 음식은 김치가 유일하다"며 "식초나 소금에 절이기만 한 음식은 파오차이뿐만 아니라 굉장히 많다. 하지만 김치는 단순 절임하고는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김치와 파오차이는 제조 공정은 물론, 발효 단계에서도 차이가 크다는 것. 조 본부장은 파오차이에 대해 "피클 같은 음식"이라며 "물에 설탕, 식초, 향신료를 넣어 끓이고 거기에 오이와 무 등 썰은 채소를 집어넣는다. 조리적인 측면에서 보면 절임배추에서 끝나는 게 파오차이"라고 설명했다. 채소를 소금에 한 번 절이고 탈수시킨 후 마늘이나 고춧가루, 젓갈 등의 부재료를 추가해 2차 발효를 하는 김치와는 과정 자체가 다르다고 강조했다.

◆ 김치→파오차이 번역, 어쩌다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렇다면 김치는 왜 전혀 다른 음식인 파오차이로 번역된 걸까. 그 이유로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외국어 번역과 표기 지침이 거론된다. 문화체육관광부 훈령 제427호 '공공 용어의 외국어 번역 및 표기 지침'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다.

문체부 훈령 상 김치는 '신치'와 '파오차이' 두 가지로 중국어 표기가 가능하다. 제4조 제2항 제3호나목에서는 '유사한 개념이 있지만 우리나라의 전통성과 고유성을 드러내야 할 경우'에 순우리말로 음역을 할 수 있다고 규정, 농림축산식품부가 선정한 김치의 우리식 중국어 표기인 '신치(辛奇)' 등 용어로 표기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정한 '신치'라는 말이 있음에도 제4조 제2항 제5호에서 '파오차이'가 등장한다. 여기서는 '중국에서 널리 사용되는 번역 및 표기는 관용으로 인정하여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 그 예로 '김치찌개'를 제시했고, 김치를 파오차이라 표기했다.

◆ 중국의 문화공정, 파오차이 방관해선 안되는 이유

논란이 불거진 후 일부 네티즌들은 "중국에서는 실제로 김치를 오랫동안 파오차이라고 불러왔다. '한국의 김치'라는 인지 하에 파오차이라고 말해온 것"이라며 이 같은 번역이 반드시 동북공정의 의미로 해석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조 본부장은 "중국 사람들은 발음 구조상 '김치'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그 나라 음식 중 가장 유사한 것을 차용해 쓴 케이스다"면서 "그렇다고 해서 김치가 중국 음식이 될 수 있는 건 당연히 아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한국의 김치에 대해 구분지어 인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최근 한복, 김치 등을 자신들 것이라 우기는 이른바 '문화공정'이 극심해진 상황임을 고려하면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는 "BTS의 영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본 방송에서 김치가 파오차이로 번역돼 전 세계로 홍보되고 있다"며 "중국이 김치를 파오차이로 왜곡하는 상황에서 이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치, 파오차이 논란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도 문제시 되고 있다. 반크는 지난해 12월 김치를 파오차이로 번역한 문체부 훈령 제427호를 바로잡아달라고 요청했지만, 6개월째 달라지지 않았고 결국 이번과 같은 사달이 났다.

◆ 김치는 한국 것, 올바르게 더 많이 알리기 위해서는

"중국어 수업 시간에 우리나라에서 흔히 부르는 것들이 표현될 때 어떻게 읽는지 배운 적이 있습니다. 진짜 상상도 못한 곳에서 중화사상이 스며든 듯한 것들이 보였습니다. 김치는 paocai. 파오차이가 김치랑 똑같은 음식이었나요? 순간 진짜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이라도 중국과 논의해 김치를 kimchi로 올바르게 표현해달라 요청해 주시고 2021년 중국어 교과서에서는 제발 반드시 김치=파오차이라고 읽지 않을 수 있도록 똑바로 고쳐주세요."
지난 4월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내용이다. 문체부 훈령에서 파오차이를 인정하다 보니, 실제로 여러 중국어 교재에서 김치를 파오차이로 표기하기도 한다. 보고 배우는 중국어 교과서에 김치가 파오차이로 되어 있는데 어떻게 항의해야 하느냐는 글도 온라인 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지금 중국에서 새로운 문화공정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잡고 김치의 중국어 표기법 등을 재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지 전문가 및 홍보 전문가들과의 공청회를 통해 문제를 공론화시키고, 국민들의 의견을 청취해 수렴할 수 있는 방법을 거치는 것도 좋을 것"이라며 "상황을 역전해 김치를 세계인에 널리 알리는 기회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