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출신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1883~1950)는 ‘창조적 파괴’가 자본주의의 원동력이라고 주장했다. 기업가가 기술 혁신으로 낡은 기술과 제품을 파괴하고 신기술과 신제품을 탄생시키며 변혁하는 창조적 파괴의 힘이 자본주의를 이끈다고 본 것이다. 그는 역설적으로 자본주의는 창조적 파괴로 인해 붕괴될 것이라고도 예견했다. 조직이 관료화하고 지식인의 실업이 늘어나는 등 자본주의의 모순이 드러나면서 새로운 체제로 대체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슘페터는 1942년 펴낸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에서 자본주의가 창조적 혁신을 불러오는 가장 좋은 제도이기는 하지만 양극화 때문에 결국은 사회주의로 가게 된다고 예언했다.

슘페터의 ‘예언서’가 나온 지 47년 뒤인 1989년 미국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저서 <역사의 종언>에서 “사회주의의 붕괴로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완전히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역사의 근거를 이루는 여러 원리나 제도가 더는 진보하거나 발전하지 않을 것”이라며 “자유 민주주의에 근거한 자본주의 문명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금 이 시점에서 슘페터와 후쿠야마 중 누가 맞는지 판단하기 이르다. 미국에서는 근래 자본주의를 다시 살펴보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자유무역이 위협받고 자국우선주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자본주의가 과연 제기능을 하는지 천착해보자는 것이다.

[책마을] 자본주의의 진화…CEO가 일을 가장 많이 한다
미국 경제학자 브랑코 밀라노비치 뉴욕시립대 교수는 이런 관점에서 21세기 글로벌 경제의 자본주의 모습을 진단하고 앞으로의 갈 길을 모색한 책< Capitalism, Alone (홀로 선 자본주의) >(하버드대출판사)을 내놨다.

밀라노비치는 이 책에서 “사회주의가 쇠락한 마당에 자본주의가 현존하는 유일한 경제체제”라고 밝힌다. 저자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단점도 있지만 장점이 더욱 많은 제도다. 현재 자본주의는 여러 갈래로 분화되며 서로 경쟁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고전적 자본주의에서 민주적 자본주의를 거쳐 ‘성과 자본주의(liberal meritocratic capitalism)’로 나아갔다. 중국은 사회주의 모델에서 ‘정치 자본주의(political capitalism)’로 진화했다.

밀라노비치는 우선 21세기 미국에서 관찰되는 성과 자본주의는 고전적인 자본주의나 20세기 민주 자본주의와 어떻게 성격이 다른지 설명한다. 노동을 하지 않는 고전적 자본가와 달리 지금의 자본가는 근로자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노동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은 최고경영자(CEO)며 주식을 보유한 투자가도 대부분 자기 일을 한다.

자본소득이 높을수록 노동소득이 높다는 역설적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런 성과적 자본주의는 고전적 자본주의로 다시 회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자본가와 근로자 간 소득격차가 심해지고 고소득 자본가들은 결혼과 자식 교육에서 계급화 또는 계층화를 이루려 하고 있다. 20세기엔 볼 수 없던 형태다.

정치 자본주의는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 정치를 활용하는 시스템이다. 전쟁 및 무역도 이런 정치 자본주의의 한 단면이다. 능력 있는 전문 관료들을 활용하고 특정한 제도나 법의 속박을 무시한다. 국익에 따라 민영기업도 조정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런 정치 자본주의가 큰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관료들이 법 집행을 제멋대로 하면서 부패가 만연해지고, 이런 부패는 불평등을 낳고 사회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부패가 심해지면 성장을 유지할 수가 없다.

밀라노비치는 글로벌 가치사슬망에 얽혀 있는 무역 시스템이 자본주의 체제를 바꾸고 있다고 진단한다. 기술 보급이 이전보다 보편화되면서 각국 간 경제와 정보의 평등화가 진척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미래의 자본주의 시스템이다. 성과 자본주의는 자연적인 데 비해 정치 자본주의는 다분히 제도적이고 인위적이다. 이런 정치 자본주의는 체제적 모순과 부패 등으로 대중적 불만이 높아질 수 있다. 물론 성과 자본주의도 문제가 많다.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계급이 형성되고 있다. 금전을 기반으로 정치를 움직이려는 금권 정치의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그는 이런 자본주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중산층을 위한 세금 감면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공공 교육을 강화해야 하며 정치의 공적자금도 줄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가장 큰 위협은 부패”라며 “부패의 척결이야말로 자본주의의 가장 큰 과제”라고 강조한다.

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