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화분 - 유희경(1980)
나에겐 화분이 몇 개 있다 그 화분들 각각 이름을 붙여주었지만 어쩌면 따박따박 잊지 않고 잎 위에 내려앉는 햇빛이 그들의 본명일지도 모르지 누구든 자신의 이름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젖을 정도로 부어주는 물도 그들의 이름일 테지 흠뻑 젖고 아래로 쏟아낸 물을 다시 부어주어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나의 발을 보았다 거실의 부분, 환하다

시집 <당신의 자리―나무로 자라는 방법> (아침달) 中

어느덧 가을이 왔습니다. 가을의 식물은 다채롭고 참 따뜻하지요. 시인은 어린아이들이 장난감이나 애착물품에 꼭 이름을 붙여주듯이 화분에 각각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해요. 시인이 식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우리는 어느새 태어나서 누군가 지어준 이름으로 불리는 동안에 벌써 이만큼 자랐네요. 이름이라는 애착이 우리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변함없이 찾아오는 햇빛이 없었다면 우리는 빛을 보지 못한 식물처럼 생기를 잃었을 거예요. 햇빛은 무엇일까요? 당신 자신일 수도 있고,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죠. 오늘은 누군가의 햇빛이 되어 보세요. 자기 자신의 햇빛이 되어도 좋겠지요.

이서하 < 시인(2016 한경 신춘문예 당선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