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동아시아 근대화 원동력은 '조총과 장부'였다
세계 역사에서 15세기 이후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다. 15~17세기에 전례 없는 원양 항해가 성행했고, 이 시기를 ‘대항해 시대’라고 칭한다. 대항해는 경제 세계화의 문을 열어 세계를 새로운 단계로 진입시켰다. 국가 경계라는 벽을 허물고 더 많은 지역을 긴밀하게 연결시켰다. 이전에도 국제 네트워크가 존재했지만 이 시기에는 무역이 더 활발해지며 경제가 빠르게 발전했다.

이 세계화의 흐름은 유럽인이 주도했다. 아메리카 신대륙부터 인도양, 동아시아 지역까지 정복하며 식민지를 만들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항해술의 발전과 더불어 화기 기술의 발달을 통한 서양의 군사 혁명이었다. 15세기 이전까지 화기 기술이 가장 발전한 곳은 중국이었으나 15세기 이후 양자 간 우위가 뒤바뀌기 시작했다. 대포와 조총의 사용이 보편화하면서 군대 조직과 작전 방식에도 큰 발전이 이뤄졌다.

중국을 필두로 한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이 시기에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마찬가지다. 17세기에 명나라가 망했고, 일본도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으며 ‘간에이 대기근’이 발생했다. 중국 경제사 전문가인 리보중 베이징대 석좌교수는 《조총과 장부》에서 신무기 ‘조총’으로 대표되는 군사 기술과 ‘장부’로 상징되는 상인 무역 발전이 어떤 식으로 동아시아의 변화에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한다. 국제 무역과 폭력의 융합이 동아시아에 근대화라는 변화를 가져왔다.

저자는 유럽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중국과 주변 동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근대화 과정을 조명한다. 동아시아는 오랫동안 ‘조공시스템’이란 특수한 국제질서가 자리잡고 있었다. 저자는 “조공시스템은 종주국과 번속국이 서로 이득을 얻는 일종의 호혜관계였다”고 말한다. 중국이 대외 확장에 나서지 않은 것은 영토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고 확장할 만한 공간은 사막, 고산, 한랭한 황무지 등 척박한 땅이었다. 중국은 대외 확장을 하지 않고도 스스로를 천하라고 지칭할 만큼 물자가 풍요로웠다.

16세기 오스만 제국은 유럽에서 전해온 조총과 화약기술을 동아시아에 전했다. 적극적인 곳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었고, 적극적이라고 해도 도입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었다. 시암(지금의 태국)과 미얀마 등지에서는 적극적으로 서양의 화기를 구매하고 제조 장인을 불러들여 군사력 제고에 힘썼다. 중국과 일본은 처음엔 수동적이었지만 나중에 화기 기술을 깊이 연구하고 개량해 새로운 화기를 만들어냈다. 조선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이후에야 화기 부대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식민지 정복자나 해적, 용병, 기술 장인, 선교사 등이 화기 기술 전파에 참여했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국제 무역을 하던 상인이 맡았다. 이 무역 상인들은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처럼 각지의 정권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거나 정부의 비호를 받았다. 이들은 무장 세력을 거느리고 때로는 약탈과 도적질을 하기도 했다.

경제 세계화 시대가 온 이후에는 국가 간 이익 충돌이 더욱 잦아졌다. 동북아시아에서는 일본과 여진의 세력이 강성해졌고 동남아에서는 베트남, 미얀마가 새 강자로 떠올랐다. 스페인 네덜란드 등 서양에서 온 강자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국제 무역의 무대가 넓어졌지만 아직 규칙이 정해지지 않아 수많은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저자는 “초기 세계화 시대에 조총과 장부의 출현은 근대사회로 발전하게 만든 동력이었다”고 분석한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