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도둑의 시선으로 본 도시의 이면
미국 로스앤젤레스(LA)는 한때 ‘은행 강도의 수도’란 별명을 얻었다. 광활한 수평면에 건설된 이 도시에서 은행털이범들은 마치 주유소에 들르듯 고속도로 출구(또는 입구)에 있는 은행을 털고, 고속도로로 유유히 사라졌다. LA 경찰청 항공지원팀은 그들을 추격하기 위해 세계 최대 규모로 창설됐다. 경찰 헬기는 고속도로와 바닷가 절벽, 구불구불한 협곡으로 이어진 광활한 도시를 순찰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경찰 본부는 LA 중심부, 즉 숫자로 이뤄진 주소 체계의 심장부에 있고, 도시의 번지수는 경찰 헬기가 표적을 찾아내기 쉽도록 산술적 규칙에 따라 매겨졌다.

《도둑의 도시 가이드》는 건축가와 건물주, 거주민의 시각에서 벗어나 도둑, 경찰, 건물관리인, 보안전문가 등 숨은 전문가의 시선으로 도시를 재조명한다. 2000여 년간 이어져 온 건물 침입의 역사를 아우르면서 도둑들이 건축물 및 도시 설계를 활용한 방법과 여기에 맞선 공권력의 대처법들이 ‘도시 진화의 동력’이라는 시각에서다.

도둑은 어떻게 보면 건축을 가장 잘 이해하는 자들이다. 건물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무단으로 들락거리고, 건물의 한계를 부숴버린다. 도둑에게 건물이란 화재 대피로와 비상계단, 창틀과 방충망을 설치한 베란다, 애완동물 출입구와 환기구가 마치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연결돼 무한히 돌아가는 공간이다. 저자는 할리우드 영화 ‘오션스일레븐’ ‘이탈리안 잡’ 등에 영감을 준 미국 대도둑들의 실화를 통해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도시의 이면을 흥미롭게 알려준다. (제프 마노 지음, 김주양 옮김, 열림원, 352쪽, 1만5000원)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