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 듣고, 앱이 책 골라주고… 독서의 '허들'을 넘다
퇴근 후 밤늦게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눕는다. 책 한 줄 읽지 못해 아쉽지만 정작 책을 펼쳐 들기엔 부담스럽다. 이런 생각을 하다 잠이 들고 만다. ‘눈을 감고 있으면 누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면 좋겠다.’

그렇게 책을 펴는 일이 ‘특별한 결심’ 없인 어려워진 사람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있다. 종이책이나 전자책 리더기를 찾아 꺼내들지 않아도 독서할 수 있게 됐다. 늘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에서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된다. 성우와 배우 150여 명이 녹음한 책 중 마음에 드는 걸 골라 들을 수 있다. 눈을 감고 듣다 잠들어도 괜찮다. 취침 타이머를 설정해 놓으면 자동으로 꺼진다. 기존 오디오북에 비해 한층 진일보했다.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기업 구글로부터 시작된 변화다. 구글은 지난 1월 한국을 포함한 45개국에서 오디오북 서비스를 시작했다. 총 1만여 권의 책이 있으며 매달 100여 권씩 추가된다.

한 걸음 떨어져 있던 책이 성큼 손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독서를 돕는 다양한 서비스와 앱(응용프로그램)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 서비스들은 모두 ‘시간’을 향하고 있다. 잠들기 전, 이동 중에도 책과 함께하는 것은 물론 독서의 전 과정에 걸쳐 시간을 최대한 줄여주는 방식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책과 멀어지는 동안 무의식적으로 생긴 독서에 대한 심리적 저항, 이 서비스들은 여기에 작은 균열을 내고 있다.

구글플레이에서 지난 1월부터 선보이고 있는 오디오북
구글플레이에서 지난 1월부터 선보이고 있는 오디오북
어떤 순간과 어느 장소에서도 책을 접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오디오북이다. 듣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존엔 전자책 리더기로 e북을 구매한 후 기계음으로 들어야 하거나 팟캐스트에서 일부 발췌본만 접할 수 있었다. 사람이 일일이 읽기엔 시간과 제작비가 많이 들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기술 발전으로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네이버도 이 점을 눈여겨보고 실험에 나서고 있다. 네이버는 배우 유인나의 목소리를 샘플링한 다음 음성합성기술을 적용해 실제로 텍스트 전부를 읽는 것처럼 만들어냈다. 작은 호흡, 끊어 읽는 부분까지도 자연스럽게 말이다. 제작 시간도 절반 이상 줄었다. 2016년부터 시작된 이 실험은 이제 다양한 목소리로 확대되고 있다.

오디오북뿐만 아니라 책을 고르는 일부터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해결할 수 있다. 앱 ‘비블리’는 자신의 책장 사진을 찍으면 책 제목을 분석해 자동으로 목록을 만들고 ‘문학’ 40%, ‘자기계발’ 20% 식으로 관심 분야를 분석한다. 선호하는 태그도 같이 적용해 책을 추천한다. 어떤 책이 나와 맞는지 탐색하는 시간을 줄여주는 큐레이션 방식이다. 이 앱의 다운로드 수는 5만 건에 이르렀다. 책을 보고 난 후 마음에 드는 구절을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옮겨둘 수도 있다. 책 구절을 사진으로 찍고 저장한 후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두고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하이라이트(Highlight)’ 앱이다. 일일이 손으로 적거나 PC로 타이핑하지 않아도 된다. 이 앱도 1만 다운로드를 넘어섰다.

여기서 의구심이 든다. 독서량은 계속 줄어드는데 국내외 대표 기업부터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까지 왜 책 시장에 뛰어드는 걸까.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7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만 19세 이상 성인 10명 중 4명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 책을 읽는 사람들의 전체 독서량도 줄었다. 연평균 독서량은 2007년 12.1권에서 2017년 8.3권으로 3.8권 감소했다. 책을 읽기 어려운 이유 1위는 ‘시간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책에 대한 열망은 결코 작아 보이지 않는다. 최근 2~3년 동안 급증한 동네책방의 열기가 사그라들지 않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다만 독서 자체가 시간이란 틀에 갇혀 특별한 결심, 특별한 시간을 들여야 하는 행위가 되고 있을 뿐이다. 아마도 이 시장에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것은 독서의 가장 큰 허들인 시간 문제만 해결한다면 그 잠재력이 폭발적일 것이란 판단 때문이 아닐까.

스테디셀러 《책은 도끼다》를 쓴 광고인 박웅현은 “책은 무뎌진 우리의 감각을 일깨우는 도끼”라고 말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 매일 똑같은 감각과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진 않은가. 이제 잠들어 있던 자신을 깨우기 위한 도끼가 손안에 들어와 있다.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