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않은 고통, 미리 경고하는 게 소설가 임무"
“소설은 인간에게 닥쳐올 재난과 고통, 위기를 알려주는 영역입니다. 인류는 몇 천 년간 인간이 고통받는 이야기를 써왔어요. 이브는 아담과 함께 기어코 선악과를 따먹어 인류를 고통 속에 빠지게 하고, 카인은 동생인 아벨을 죽이죠. ‘인생은 끝까지 순탄하지 못하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일을 겪을 수 있고, 그것은 매우 고통스럽다’는 걸 알려주는 게 소설가들의 임무입니다.”

28일 서울 연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소설가 김영하(사진)는 문학을 ‘인간이 예기치 못한 끔찍한 고통을 얼마나 위엄 있게 극복하는가를 보여주는 영역’이라고 정의 내렸다. 현실과 동떨어진 것 같은 이야기를 소설만의 방식으로 풀어내 독자들이 스스로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7년 만에 들고나온 단편 소설집 《오직 두 사람》(문학동네)도 그가 강조한 문학의 역할에 충실한 작품이다. 단편 7편으로 이뤄진 이 책이 천착한 고통은 ‘상실’이다. 특히 무언가를 잃어버린 ‘그 이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제는 비슷하지만 7편의 결은 저마다 다르다. 그는 “특히 ‘아이를 찾습니다’가 쓰인 시기(2014년)를 기점으로 그 전과 그 후의 삶과 소설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해 4월 발생한 세월호 사고 때문이다. 사고 이전에 쓰인 ‘옥수수와 나’ ‘최은지와 박인수’ ‘슈트’에서 주인공은 무언가를 잃어버린 이후 자기기만에 가까운 합리화를 통해 애써 위안을 얻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 이후의 네 작품에서 상실은 무력감을 동반한 회복 불가능한 것으로 묘사된다. “사고 이전엔 명랑한 얘기까진 아니더라도 소설에 블랙유머를 담는 게 가능했지만 그 이후엔 그런 것들을 구사할 여유조차 생기지 않았습니다.”

"예기치 않은 고통, 미리 경고하는 게 소설가 임무"
‘내 아이를 찾습니다’에선 상실 이후의 삶이 극단적으로 묘사된다. 윤석은 유괴된 아이를 찾기만을 11년간 사무치게 바라왔지만 막상 아들을 찾고 난 뒤의 상황은 상상과는 다르다. 자신이 유괴된지도 몰랐던 아들은 친부모를 극도로 낯설어한다. 주인공이 그토록 바라왔던 행복은 숙제가 끝난 뒤에도 그의 것이 아니다.

“사고가 일어난 뒤 세월호 유족들은 시신만이라도 찾길 바랐어요. 시신이 돌아온 후 그들은 일상으로 돌아왔나요?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엔 존재해요. 상실 그 이후를 필사적으로 살아내야 하는 거죠.”

‘신의 장난’에선 우리가 발 디딘 사회가 ‘영원한 지옥’으로 그려진다. 네 남녀는 한 기업의 채용 과정에서 방을 탈출하라는 미션을 받고 방에 들어선 뒤 진짜 갇혀버린다. 취업난에 힘들어하는 청년 세대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다.

소설 속에서 그가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은 밝지 않다. 외로움과 상실이 기저에 있다. 그의 실제 삶은 어떨까. “소설가니까 인생의 고통에 대해 글을 쓰지만 평소엔 소소한 행복을 많이 추구해요. 아침에 갓 구운 머핀을 먹으면 참 행복해요. 꽃도 가꾸고, 좋은 음악도 많이 듣죠. 인생에서 겪는 고통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지금 느끼는 행복이 더 달콤할 수 있어요.”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