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한 가지만 깊게 판다고?…경계 넘나들며 벽 없애라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이 아름답다. 비례가 완벽하다.”

옛 건축물을 관람할 때 흔히 듣게 되는 감상평이다. 시인이자 건축가인 함성호 씨는 이처럼 건물을 부위별로 바라보는 것은 서구 미학의 관점이라고 지적한다. 우리 선조들은 집을 지을 때 비율 등을 고려하기보다는 어디에 자리 잡고, 어떤 당호를 붙일지에 더 관심이 많았다고 설명한다.

《융합 인문학》은 김상환 서울대 철학과 교수, 함성호 시인, 강운구 사진작가, 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등 인문과 예술,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다양한 분야의 학자와 예술가들이 영남대 기초교육대학에서 ‘융합적 사고’를 주제로 강의한 내용을 엮었다. 책은 사물과 개념을 잘게 쪼개 바라보고, 연구 영역을 세분화하는 서구의 근대적 관념에서 벗어나 융합적으로 사고해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공지능이 수많은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작은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볼 수 있는 넓고 광활한 시선이라고 강조한다.

“부채꼴의 인간 … 원시인은 혼자서 엽사, 공예가, 건축가, 의사를 겸했다. … 현대인은 그중 하나를 선택한다. 미래는 전적인 인간을 요구한다.” 시인 이상의 산문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는 자신의 필명에 ‘상자 상(箱)’자를 썼다. 근대적 인간은 저마다 자신의 상자에 갇혀 있다는 것으로, 근대 문명에 대한 신랄한 반어법이다. 김 교수는 “전문성을 얻는 대신에 전인성을 상실하는 것이 근대인의 운명”이라며 “패러다임의 변동기일수록 횡단적인 사고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상식적인 선에서는 가까워질 수 없는 체계 사이를 횡단해야 좋은 아이디어가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화기, 인터넷, 사진기, 녹음기를 하나로 합쳐 놓은 아이폰도 이런 융합적 사고에서 비롯됐다.

전지혜 교보문고 광화문점 북마스터는 “융합적 사고에 대해 대학생들이 관심을 가지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분야별로 설명한 책”이라며 “생각의 벽을 허물고 경계를 넘나듦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넓은 시야를 제공한다”고 소개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