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끈…, 쿵'

13일 부산 범어사 대웅전 앞마당. 범어사 주지 정여스님을 포함한 예닐곱 명의 스님들이 일제의 표지석을 밧줄에 매달아 잡아당겼다.

그러자 표지석은 비 오는 대웅전 앞마당 흙바닥 위로 맥없이 쓰러졌다.

뿌리를 드러낸 길이 80㎝가량의 화강암 표지석 뒷면엔 '조선총독부'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부산의 천년고찰인 범어사가 해방 64년이 지나도록 남아있는 일제의 잔재를 걷어내는 청산작업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이번 청산작업은 민족문화 복원 및 중.장기 발전 계획인 '범어사 종합정비 계획'(2014년 완료)의 1단계 사업으로 2011년에 끝난다.

이 작업에는 총 50억 원이 투입된다.

범어사는 이날 조선총독부 표지석 제거와 함께 일제가 만든 3층 석탑의 하단 기단부와 난간을 해체했다.

표지석은 박물관에 보관하고, 3층 석탑은 원형 그대로 복원하는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범어사는 또 경내 84m에 이르는 일본식 난간과 대웅전 석축 화단에 있는 금송 세 그루를 들어낼 계획이다.

아울러 대표적인 일본양식인 보제루(普濟樓)도 없애고 일제에 의해 보제루 왼쪽으로 옮겨진 종루(鐘樓. 종을 달아 두는 누각)를 원위치로 돌려놓기로 했다.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한 범어사는 임진왜란 때 승병의 사령부로 왜적 퇴치에 앞장서고 3.1 독립운동을 주도하는 등 민족정기를 바로 세워 온 호국 도량으로 이름이 높다.

특히 한국불교건축의 진수를 담은 대표적 사찰로서 창건 당시부터 전통 불교건축 양식인 상.중.하 3단 구성을 기본으로 가람(伽藍. 스님이 살면서 불도를 닦는 곳)을 배치됐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제는 석축과 가람에 일본양식을 도입하고 일본 왕실을 상징하는 금송을 대웅전 앞에 심었다.

나아가 조선총독부 표지석을 세우는 방식으로 민족정기를 끊고 3단 가람 구성을 왜곡했다.

범어사 주지 정여스님은 "광복 이후 1950년대 범어사가 주도했던 불교정화운동이 한국불교의 전통성을 회복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운 정신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면, 이번 왜색 잔재 청산은 사찰 깊숙이 뿌리 내린 일제 잔재를 뿌리 뽑아 민족문화를 회복시키는 문화사적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부산연합뉴스) 김선호 기자 win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