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저릿한 어린 시절은 까마득한 옛날에 아득히 먼 곳에 있었던,그래서 한낱 뒷전에 묻혀 있는 존재가 아니다. 모든 일상과 정서 생활에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풍경을 카메라 렌즈로 잡아낸 사진 작품을 모은 이색 전시회가 4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소격동 선 컨템포러리에서 열린다.

유년 시절의 기억을 거울의 양면처럼 사진으로 되살려낸다는 취지에서 이번 전시회의 주제를 '앨리스의 거울'로 정했다. 참여 작가는 영국 인기 사진 작가 줄리아 바튼을 비롯해 스웨덴 출신 루비자 링보르그,호주 작가 폴리세니 파파페트루 등 세 명.

어린 시절 겪은 즐거운 기억뿐만 아니라 외로움,두려움 등 다양한 심리 상태,몽상,무모한 도전들에 관한 이야기를 사진 작품으로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세계 사진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줄리아 플러튼 바튼은 평범한 10대 소녀들이 성숙한 여인으로 변모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변이를 세심하면서 날카롭게 잡아낸 '인 비트윈(In between)'시리즈 7점을 출품한다. 평범한 10대 소녀들이 거실이나 침대,계단에서 움직이는 자연스런 모습을 라이팅 효과(자연광과 인공광 혼합)에 의한 기묘한 색감 연출과 비현실적 배경 선정 등의 기법으로 포착해 눈길을 끈다.

스웨덴의 젊은 작가인 루비자 링보르그는 유년기의 부끄러운 오점과 경이로움에 대한 기억을 렌즈로 잡아낸 '원더랜드'시리즈를 선보일 예정이다. 가면을 쓴 소녀,공중에 붕 떠 있는 아이,얼굴에 붉은 물감을 칠하고 바닷가에 서 있는 소녀 등 '원더랜드'시리즈는 궁정화가 벨라스케즈의 포토레이드(가족이나 유명인의 얼굴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것으로 몽환적이면서도 신비한 색감의 북유럽 특유의 정서가 느껴진다.

자신의 딸을 모델로 작업하는 호주 작가 폴리세니 파파페트루 역시 최근 비디오나 인터넷 게임 확산으로 어린이들의 틀에 박힌 삶을 '풍경은 어떻게 그들에게 상실되고 있는가'라는 작품으로 보여준다. 그의 '게임의 연속'시리즈는 호주의 아름다운 산야를 배경으로 어린이들이 즐겁게 뛰노는 장면을 포착한 작품.유년기 놀이의 기억을 탐험하며 게임이나 비디오 영상물에 빠진 요즘 10대들의 왜곡된 정서를 건드린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