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구질구질하게 살아온 한 도미니카계 이민자 집안이 있다. 주인공 오스카 와오는 유년시절 짧은 황금기를 구가했으나 이제는 몸무게 110㎏에 달하는 추남 뚱보가 됐다. 도미니카 남자 중 숫총각으로 죽은 사람이 없다는 속설을 고려해보면 여자 손목 한번 제대로 잡아볼 일이 영원히 없을 것 같은 오스카의 삶은 정말이지 암울하기 짝이 없다. 오스카의 누나 롤라는 이 남자 저 남자를 전전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보려 하지만,그래도 채워지지 않는 상실감과 좌절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젊은 시절 뭇 남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한때 육체파' 엄마 벨리시아는 한 남자를 사랑한 죄 탓에 죽음의 위협을 피해 미국으로 도망쳤지만,죽도록 일하면서 혼자 아이들 둘을 키우다가 유방암에 걸리고야 만다.

지난해 퓰리처상 수상작인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권상미 옮김,문학동네)은 이들을 한심한 낙오자나 의지박약자,혹은 불운한 인간들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소설의 세계관은 아주 간명하다. 인생은 '푸쿠'와 '사파'의 격전지다. '푸쿠'란 강력한 파멸이자 저주이고,우리 모두는 피할 수 없는 '푸쿠'의 자식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재앙을 피할 수 있는 역주문인 '사파'가 있다. 소설은 한 가족의 무거운 삶을 유쾌하고 수다스러운 문체로 가볍게 그려낸다.

스물일곱에 작품을 발표하며 등단한 뒤 11년 동안 침묵을 지키다 내놓은 이 첫 장편소설로 퓰리처상을 받은 도미니카 출신 작가 주노 디아스는 개인의 삶을 쥐고 흔드는 과거의 역사를 보여주며,힘없는 사람들이 이를 어떻게 견뎌내며 살아가는지 보여준다.

사람들은 엉망진창인 종말이 기다린다 해도 나름대로 즐겁고 힘차게 살아간다. 소설은 일이 꼬여도 어쨌든 열심히 살아가는 게 인생이라고,그것이 바로 '사파'라고 역설한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