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부는 조선말기 개화운동가인 구당(矩堂) 유길준(兪吉濬.1856-1914) 선생을 12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하고 기념사업을 전개한다. 유길준은 우리나라 개화기 선구자로 이론을 갖춘 개화사상가이자 실천력을 갖춘개혁정치가였으며, 국어를 보급하고 연구한 우리나라 최초의 국문학자였다. 어려서부터 당대 저명한 유학자들로부터 전통 한학을 배워 과거에 합격할 정도로 상당한 학문수준에 올라 있었다. 박규수와의 만남을 계기로 신문화와 접촉하게 되며, 1881년 5월 신사유람단의일원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게이오의숙(慶應義塾)에서 공부했다. 1883년 7월에는 견미보빙사절단의 일원으로 도미, 최초의 미국 유학생이 되어보스턴 근처 명문 사립고등학교 더머아카데미(Governor Dummer Academy)에 입학, 서구민주주의, 국제법 등 서양사상과 문물을 직접 보고 배웠다. 2년 정도 미국에 머문 후 귀국 길에 유럽을 둘러 보았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갑신정변에 연루된 죄로 체포돼 7년간 연금생활을 했으며, 그 기간 우리나라 최초의국한문혼용 기행문인 「서유견문」(西遊見聞)을 썼다. 이 책은 개화기 서양사상, 문물 등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책이다. 연금해제후 군국기무처 회의원, 내각총서, 내무대신을 역임하며 갑오개혁을 이끌었다. 1896년 2월 아관파천으로 친러시아 정권이 수립되면서 정국이 급변, 전 내각대신들에 대한 포살령이 내려지자 일본으로 망명했다. 1907년 8월 귀국할 때까지12년 가까이 망명생활을 했다. 긴 망명시절 국어문법을 연구하고 국민들을 계몽시키기 위해 외국의 독립사, 멸망사 등 세계역사에 관한 책들을 번역했다. 1907년 헤이그밀사사건으로 고종황제가 물러난 직후 망명신세에서 벗어나 귀국하면서 흥사단을 설립하며 수십권의 교과서를 편찬하고, 교사를 양성하는 등 전국적인 국민교육의 체계를 세워보고자 노력했다. 일찍이 국어의 중요성을 깨닫고 국어를 사용하여 교육하고 계몽하여 국민의 자질을 향상시키고 애국심을 고취시키고자 했다. 우리나라의 국어문법을 연구한 최초의 국문학자로서 30여년간을 국어연구에 몰두하며 국어문법책인「대한문전」을 저술했다. (서울=연합뉴스) 서한기기자 sh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