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쉰셋/정정한 자작나무,백혈병으로 몸을 부리고/여의도 성모병원 1205실/1번 침대에 누워 그녀는 깊이 잠들었다/혈소판이 깨지고 면역체계가 무너져 몇 개월째/마스크를 쓴 채 남의 피로 연명하며 살아간다'(시 '아내의 맨발' 중) 중견시인 송수권(63)이 백혈병을 앓고 있는 아내에게 바치는 시와 산문을 묶어 '아내의 맨발'(고요아침)이란 책을 냈다. 시인의 아내는 세상 물정도 모르고 오직 시만 쓰는 남편과 세 아이를 위해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낙도에서 똥장군을 지고 나르며 수박을 키웠다. 최근 남편의 평생 소원이었던 집필실까지 마련해 준 억척스런 아내였지만 백혈병 앞에 그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저의 아내 연잎새 같은 이 여자는,똥장군을 지고서 저를 시인 만들고 교수를 만들어 낸 여인입니다… 보험회사 18년을 빌붙어 하늘에 별 따기보다 어렵다는 교수까지 만들어 냈습니다. 저를 오로지 시만 쓰게 하여 교수 만들고 자기는 쓰러졌습니다. 첫 월급을 받아놓고 '시 쓰면 돈이 나와요,밥이 나와요,라고 평생 타박했더니 시도 밥 먹여 줄 때가 있군요!'라고 울었습니다.'(산문 '연엽에게' 중) 얼마 전 수술 날짜까지 받아두었지만 시인의 아내는 2억원이 넘는 골수이식 비용이 부담스러워 몰래 병원을 빠져나가 행방을 감춰 버리기도 했다. 평생 시인으로만 살고 싶어하는 남편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보세요. 우리 중환자실 대부분이 골수 이식을 하고도 5년이 못돼 감염되고 면역체계가 없어져 다시 들어오고 있잖아요. 제가 5년 더 살겠다고 이식비만 2억이 넘는다는데…이건 아니에요!"(산문 '연엽에게' 중) 시인은 매일 피가 모자라 사경을 헤매는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현실이 한없이 절망스럽다. '그 蓮(연) 잎새 속에 숨은 민달팽이처럼/너의 피를 먹고 자란 시인,더는 늙어서/피 한 방울 줄 수도 없는 빈 껍데기 언어로/부질없는 시를 쓰는구나'(시 '아내의 맨발' 중) 수술을 거부해오던 시인의 아내는 얼마 전 우여곡절 끝에 남동생으로부터 골수를 이식받아 수술대에 누웠다. 병원에는 보증금 1천5백만원을 걸었을 뿐이다. 더 들어갈 병원비를 마련할 길도 막막하다. 병원에서는 결과를 아직 알 수 없다고 한다. 시인은 "당신이 숨을 거둔 후에 부질없는 시를 다시 쓰게 되면 손을 자르겠다"는 절필선언을 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