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언론인 이규행씨(전 한국경제신문 사장)가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인 달마대사의 삶을 다큐소설로 엮은 ''행복한 달마''(백암,1만2천원)를 펴냈다. 남인도 향지국의 셋째왕자로 태어난 달마대사의 원래 이름은 보리다라.어려서부터 왕자로서의 화려한 생활보다는 불법에 귀의해 깨달음을 구했고 불조(佛祖) 석가모니의 27대 제자인 반야다라 조사로부터 법통을 이어받아 28대 조사가 됐다. 이름도 ''큰 법보에 통했다''는 뜻의 ''보리달마(達摩)''로 바꿨다. 소설은 어린 시절의 달마가 석가모니불처럼 몰래 왕궁을 떠나는 가출사건으로부터 시작한다. 천상산(千象山) 천상사에서 수련·수행에 전념하던 달마는 정체가 들통나면서 다시 왕궁으로 돌아오지만 스승 반야다라 조사가 찾아와 법통을 전해준다. 이 때 스승은 "내가 너에게 전한 하나(一)의 진법은 본시 동쪽에서 전래한 것"이라며 "내가 죽은 뒤 67년이 지난 다음 동쪽 땅으로 가서 진법을 전하라"고 당부한다. 남인도에서 불법을 전하며 때를 기다리던 달마는 목선을 타고 3년여 만에 동토(東土),즉 중국 남부의 광쩌우에 도착,불법을 전한다. 양무제와의 만남과 숭산 소림사 동굴에서의 9년 면벽,2조(二祖) 혜가에의 전법,열반후 다시 살아난 부활사건 등 파란만장한 달마의 삶과 깨달음의 세계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특히 이씨는 달마와 우리 민족의 각별한 관계에 주목한다. 달마가 전한 ''하나''의 진법이 환웅의 가르침을 담은 ''천부경''에서 일컫는 하나와 같다는 것. 달마가 면벽수행한 동굴이 본래 환웅시대의 상징적 인물인 치우황제가 수행했던 ''치우동굴''이라는 점,달마석상의 옷소매에 숨겨진 수인법(手印法·손의 모양)이 단군의 그것과 상통한다는 점,앉아있는 모습이 결가부좌가 아니라 고구려 고분벽화나 발해의 석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세라는 점 등도 달마와 우리 민족을 잇는 끈이다. 육조 혜능의 두개골과 석가모니불의 두골사리가 이 땅에 와 있다는 점도 이 땅이 진법의 시원(始源)임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씨는 "달마선법의 수행법은 우리의 ''천부경''이나 ''삼일신고''의 수행법과 같은 것"이라며 "달마 진법의 정맥이 우리나라에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