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와 벼룩'(찰스 핸디 지음, 이종인 옮김, 생각의나무, 1만3천원)은 인터넷 시대의 직장인과 기업의 미래를 흥미롭게 예시한 책이다. 저자는 세계적인 컨설턴트. 다국적 석유회사 셸의 간부를 거쳐 런던 경영대학원 교수, 윈저궁에 있는 세인트 조지 하우스 소장, 왕립예술학회장 등을 지냈다. 그의 글은 성서와 셰익스피어 작품들에서 얻은 문장력, 자신의 병역기피나 권력에 쉽게 굴복하려는 약점 등을 숨김없이 고백하는 솔직함에 힘입어 더욱 흡인력을 갖는다. 이 책에서 그는 정체된 조직을 떠나 프리 에이전트로 혼자 살아가라는 '포트폴리오 인생론'을 얘기한다. 다양한 고객이 발주하는 서로 다른 일을 수행하며 고부가가치 능력자로 변신하라는 것이다. 제목의 '코끼리'는 20세기 고용조직의 큰 기둥이었던 대기업, '벼룩'은 혼자 일을 찾아 자유로이 돌아다니는 프리랜서를 각각 뜻한다. 창의성이 성실성보다 중시되는 사회에서 주체적인 1인 기업가로서의 자기 가치를 높이라는 말이다. 물론 샐러리맨이 어느날 갑자기 독립을 선언한다고 성공의 길이 그냥 열리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독립을 선언하는 데 필요한 마음 자세와 조건들을 알려준다. 저자는 어떻게 '벼룩'이 가장 좋은 삶의 형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는지를 고백하고 자본주의 기업문화의 위기와 변화를 설명함으로써 프리에이전트가 갖춰야 할 요건을 정리한다. 일과 생활을 구분하고 자기 스스로 스케줄을 정하며 단호하게 선택할 줄 아는 '포트폴리오 인생'의 장단점과 방법론도 말해준다. 그는 지난해 영국에서 종신계약 직장에 근무하는 노동력이 전체의 40%로 떨어졌다며 여태까지는 가지런한 수직.수평라인의 아폴로형 회사가 유행이었지만 이제는 핵심직원과 하청업자, 파트타이머 등 비상근인력으로 구성된 클로버형 회사로 옮겨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앞으로 인터넷상의 버추얼 기업, 프렌차이징을 통한 분산기업으로 바뀌는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며 신뢰를 바탕으로 한 팀원들의 소규모 'R(Relationships)경제' 단위가 주축을 이루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는 '벼룩'들에게 남들보다 뛰어나려고 하기보다 남들과 다르게 독창성을 갖추려고 노력하라고 조언한다. 또 승자 싹쓸이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승리하는 방식으로 성공의 개념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쟁적인 개인주의로부터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생활방식을 체득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코끼리의 대응책은 없는가. 저자는 기업의 규모를 키우면서도 소기업적이고 개인적인 분위기를 간직한 '연방주의'와 창조성 및 효율성을 조율한 '연금술', 번영과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 사주뿐만 아니라 아이디어 소유자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주는 제도가 가장 좋다고 말한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