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척하면서 피해만 주고 도와주는 듯하다가 자기 잇속만 챙기고 불리하다 싶으면 무조건 화부터 내며 책임을 떠넘기는 사람. '나를 미치게 하는 당신은 뱀파이어'(앨버트 번스타인 지음,김현수 옮김,좋은책만들기,1만원)는 이처럼 대인관계에서 이기적이고 해를 끼치는 사람들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임상심리학자이자 권위있는 경영자문가. 그는 사람들의 평온한 마음과 안정된 정서를 흡혈귀처럼 고갈시키는 인간을 '감정의 뱀파이어'라고 부른다. 그들은 지극히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심지어 매력적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유형을 보자. 매력적인 사기꾼 유형인 '반사회적 뱀파이어'는 '당근'과 '채찍'으로 상대방을 지치게 만든다. 이들은 달콤한 유혹으로 먹이감의 에너지를 소진시킨다. 게다가 허울만 좋다. 안전하고 실속있는 도요타보다 비싸고 화려한 페라리를 꿈꾸는 사람이 대표적인 케이스. 흥분과 환상을 즐기는 무대포형,친절하게 접근해 원하는 것을 뺏는 세일즈맨형,분노에 중독된 싸움꾼형도 여기에 속한다. 쇼맨십의 달인인 '연극적 뱀파이어'는 애정으로 위장하는 유형. 이들은 역겨운 섹시함과 최면술로 사회질서를 혼란시키는 3류배우형,인정과 관심에 목말라하지만 그것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뒤에서 보복하는 수동·공격형으로 나뉜다. 못말리는 왕자병에 걸린 '나르시스적 뱀파이어'는 자신을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착각한다. 스스로를 누구보다 재주있고 지적인 존재라고 여기는 자기도취형,자신이 지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믿으며 도무지 만족할 줄 모르는 슈퍼스타형. 상대방도 특별한 존재라고 꼬드기면서 원하는 것을 얻는 순간 차버린다. 괴로운 도덕군자라 할 수 있는 '강박적 뱀파이어'는 열심히 일하고 규칙대로 하면서 주변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하는 완벽주의형과 엄격한 흑백논리나 도덕적 룰로 무장한 청교도형. 망상에 사로잡힌 의심꾼 '편집증적 뱀파이어'는 과대망상에 빠진 몽상가형과 늘 배신의 단서를 찾느라 스스로 죽어가는 질투형. 이같은 뱀파이어들은 자신을 원칙과 규칙에서 제외되는 인물로 생각하고 잘못을 저질러도 무책임하며 반성할 줄도 모른다. 사실 이들은 심리학의 인격장애에 해당하는 특성을 지녔다. 저자는 이들 유형에 대한 객관적 대응책을 조목조목 일러준다. 실제상황과 두 사람의 대화 등 구체적인 예와 함께 유형별 10가지 대응 전략과 치료법을 제시한다. 책장을 넘기다가 혹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더라도 놀랄 필요는 없다. 우리는 누구나 인격장애를 조금씩 갖고 있으며 그것의 실체를 알면 오히려 문제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흡혈귀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는 무기가 십자가나 마늘이 아니라 뱀파이어를 꿰뚫어볼 줄 아는 눈과 판단력,지적이고 성숙한 대처방안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