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계의 대표적인 진보학자로 손꼽히는 손호철교수(43.서강대정외과)가
해방 50년사를 시기별 쟁점을 중심으로 분석한 "해방50년의 한국정치"
(새길간)를 펴냈다.

"해방 50년사를 국가-시민사회의 틀로 분석하려는 최근의 지배적인
경향을 비판적으로 평가해보려는 것이 이 책의 목적입니다"

국가권력과 자본의 문제를 일관되게 연구해온 손교수는 "한국정치를
설명하면서 시민사회의 성장이 민주화를 가져왔다고 보는 최근의 경향은
사회적 동인의 핵심적 부분을 가리는 측면이 크다"고 말한다.

즉 한국의 민주화를 시민사회 성장의 결과로 인식하는 것은 그동안
한국정치의 억압성과 반민주성의 원인이 단순히 국가에만 있다는 것을
은연중 강조하고 있다는 것.

이는 억압성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시민사회의 내부,특히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계층간의 균열속에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도록 하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설명이다.

"해방공간에서도 마찬가지 설명이 가능합니다. 시민사회의 한부분인
친일지주와 중.소자본가계급은 전국노동자평의회등과 연대해 이승만
체제에 대항한 게 아니라 오히려 친정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죠.

이는 해방정국의 돌파가 지배계급을 포함한 국가와 민중간 투쟁의
산물이었음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그는 따라서 민주화의 성패여부는 시민사회의 성장 그 자체가 아니라
시민사회 내부의 힘의 역학관계를 얼마나 민중쪽에 유리한 방향으로
변화시켜 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현 문민정부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하고 있다.

"문민정부 들어 실시한 과감한 개혁조치,즉 군개혁,공직자재산공개,
금융실명제등이 한국정치의 중요한 발전요소임을 부인할수 없지만
근본적인 성격은 오히려 자본의 합리화 측면이 강하다고 볼수 있습니다.

특히 현 정부의 노동정책을 보면 쉽게 알수 있죠.이런 의미에서 현
정부는 완전한 자유민주주의를 달성했다고 볼수는 없다고 봅니다"

손교수는 따라서 현 정부의 개혁조치를 보완하고 정치적 민주주의를
가속화시키기 위해서는 초당파적인 개혁세력의 대연합과 민중운동의
활성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만이 그가 한국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지역주의와
전근대적인 정당구조,두가지를 근본적으로 치유할수 있다고 주장한다.

손교수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주립대(오스틴)에서
정치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전남대교수를 지냈고 "한국정치학의 재구상" "전환기의 한국정치"
"현대세계체제의 재편과 제3세계" "한국전쟁과 남북한사회의 구조변화"
등의 저서를 냈다.

< 정종태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