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제작비가 엄청난 액수로 치솟고 있다.

최근 개봉된 "영원한 제국"(감독 박종원)이 순수제작비만 12억원이상
들어간데 이어 올여름에 공개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감독 정진우)와
"울밑에선 봉선화야"(감독 정지영)의 경우 각각 40억원이상씩 투입돼
관심을 끌고있다.

해외촬영이 끝난 "애니깽"(감독 김호선)도 당초예산 25억원을 훨씬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까지 국내에서 제작비가 가장 많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 영화는
"태백산맥"(감독 임권택). 태흥영화사(대표 이태원)측에 따르면 약30억원
이 투입됐다.

"하얀 전쟁"(감독 정지영)이 20억원,"구미호"(제작 신씨네)가 15억원
안팎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한국영화의 제작비가 40억원을 넘는것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울밑에선 봉선화야"가 처음인 셈이다.

이처럼 한국영화의 제작비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은 할리우드영화에
길들여진 국내관객들이 갈수록 대작을 선호하고 감독이나 제작자들도
세계시장을 겨냥, 굵직한 작품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때문으로 풀이된다.

"울밑에선 봉선화야"를 기획제작하는 대동흥업의 도동환사장(57)은 광복
50주년을 맞는 올해 종군위안부문제를 다루는 이 영화에 40억원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68년 "상해임시정부"를 만들었던 그는 "우리 민족의 혼이 담길수 있는
작품을 기획하던중 87년부터 이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며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돈을 더들여 필생의 역작으로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울밑에선 봉선화야"에는 일본 중국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등 6개국
배우들이 출연하며, 중국과 남양군도등 당시현장 올로케이션으로 촬영될
예정. 완성되면 동남아등 세계20개국에서 개봉한다는 방침도 세워놓고
있다.

배역이 확정되는대로 3월중 크랭크인해 광복절에 개봉할 계획이다.

정진우감독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현재 미국 프랑스 폴란드등
해외촬영을 거의 끝내고 컴퓨터그래픽등 특수촬영작업이 진행중인 상태.

김진명씨의 소설을 원작으로 국내에서 처음 만드는 핵소재 영화.
제작사인 우진필림측은 2009년 서울의 모습과 한일공군기 전투장면,
지하핵폭발 현장등을 특수처리하는 과정에서 제작기간이 다소 길어지고
제작비도 당초의 30억원에서 10억원정도가 더 늘어났다고 밝혔다.

역시 국제영화제와 해외시장 진출을 노리겠다는 것이 감독과 제작사의
전략이다.

지난해 6월부터 본격 촬영에 돌입, 상반기중 개봉될 예정이다.

영화계에서는 제작비가 늘어나면 그만큼 좋은 작품을 만들수 있다는
점을 들어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영화산업의 현실을 무시한 "외형 부풀리기" 경쟁이라는
일부의 비난도 있다.

흥행에 집착한 나머지 시장규모나 합리적 손익계산과는 거리가 먼
숫자놀음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