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창 TSMC 설립자 [사진=TSMC]
모리스 창 TSMC 설립자 [사진=TSMC]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대만 TSMC가 업계 예상을 깨고 올 2분기(4~6월) 큰 폭의 매출 증가세를 기록했다. 하반기 반도체 시장 경기 침체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지만 TSMC는 오히려 견조한 실적을 자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형 글로벌 고객사들의 TSMC 쏠림 현상이 한층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TSMC, 예상 뒤엎고 분기 기준 '사상 최고 실적'

16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TSMC는 지난 14일 실적 발표에서 올 2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3.5% 증가한 5341억 대만달러(한화 약 23조6200억원), 순이익은 76.4% 급증한 2370억 대만달러(약 10조4800억원)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모두 분기 기준 사상 최고 기록이다.

미국 경제 전문 매체 블룸버그통신은 TSMC의 2분기 매출 총이익률이 전년 동기 대비 9.1%포인트 상승한 59.1%에 달해 26년 만에 최고치를 올렸다고 보도했다. 영업이익률 역시 10%포인트 증가한 49.1%를 기록했다.

앞서 시장은 TSMC의 2분기 매출 증가율이 30%대 중반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TSMC의 2분기 실적이 시장 예상치를 크게 웃돌면서 반도체 업황 위기론도 다소 수그러드는 분위기다.
TSMC 로고 [사진=TSMC 홈페이지]
TSMC 로고 [사진=TSMC 홈페이지]
부문별로 보면 5㎚(나노미터·10억분의1m) 출하량이 전체 웨이퍼 매출의 21%를, 7㎚가 30%를 기록해 첨단 공정이 전체 웨이퍼 매출의 51%를 차지했다. 삼성전자와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첨단 공정이 TSMC의 호실적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가장 많이 양산한 반도체는 고성능컴퓨터용(HPC)으로 전체의 43%를, 스마트폰이 38%의 비중을 차지했다. 웬델 후앙 TSMC 최고재무책임자(CFO)는 "2분기 실적은 2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사상 최대 순이익을 달성했다"며 "HPC, 사물인터넷(IoT), 자동차 등과 관련된 반도체 수요가 뒷받침된 덕분"이라고 말했다.

TSMC의 자신감..."올 3분기 이어 내년에도 호실적 전망"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TSMC의 호실적에 대해 블룸버그와 일본 경제 전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TSMC의 최대 고객인 미국 애플의 스마트폰 아이폰13용 반도체와 정보기술(IT) 대기업의 서버용 첨단 반도체 출하량이 2분기에 견고했던 것이 실적 호조로 이어졌다"며 "시장 수급 불균형에 따른 반도체 가격 상승도 TSMC 수익성 개선에 도움이 됐다"고 보도했다.

TSMC는 한 발 더 나아가 반도체 칩 수요 둔화도 단기적 현상일 것으로 바라보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시장에서는 소비자들의 가전제품 소비가 줄면서 제품에 사용되는 반도체 수요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TSMC는 불안한 시장 상황에도 불구하고 반도체에 대한 장기적 수요는 분명하다면서 앞으로의 실적도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대만 TSMC 반도체 생산라인 [사진=TSMC]
대만 TSMC 반도체 생산라인 [사진=TSMC]
전문가들은 TSMC의 압도적 시장 점유율과 매출 추세 등을 근거로 실적이 계속 탄탄할 것으로 봤다. 특히 씨티은행 분석가들은 TSMC가 하반기와 내년에도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호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추측했다.

로이터 역시 "TSMC는 첨단 공정 수요 견고로 올 3분기 실적도 양호할 것으로 보인다"며 "3분기 매출액이 198억~206억달러(약 27조원) 사이로 급증할 것으로 추산한다"고 했다.

증권가도 TSMC의 질주를 예상했다. 올해 TSMC가 사상 처음 연간 반도체 영업이익 1위 기업에 등극할 것이란 관측까지 나왔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TSMC사전에 경기침체(리세션)라는 단어는 없는 것 같다. 전세계가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이라는 스트레스에 힘들어 하는 상황에서도 놀라운 실적과 가이던스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며 "반도체 섹터 영업이익 1위는 인텔과 삼성전자가 번갈아 차지해왔던 불가침의 영역이었지만 올해에는 TSMC가 이들을 제치고 사상 처음으로 반도체 영업이익 1위 기업에 등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점점 더 TSMC로 기우는 퀄컴 움직임

외국에서도 비슷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전자업계 업황을 정확하게 예측하기로 유명한 궈밍치 대만 TF인터내셔널증권 연구원은 지난 14일 자신의 트위터에 "최근 조사에 따르면 TSMC는 내년과 2024년 퀄컴의 5G 플래그십 칩 독점 공급업체가 된다"며 "이는 두 회사에 엄청난 윈-윈이 될 것"이라고 적었다.

퀄컴은 올 초 출시된 모바일프로세서 스냅드래곤8 1세대의 생산을 삼성전자 4나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정에 맡겼다. 하지만 업그레이드 모델인 스냅드래곤8 1세대+는 TSMC로 변경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퀄컴이 원하는 수준의 수율(양품 비율) 달성에 실패했고 이는 제품 판매 부진으로 이어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퀄컴은 내년에 출시할 스냅드래곤8 2세대뿐만 아니라 2024년 스냅드래곤8 3세대까지 TSMC에 맡기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궈 연구원은 "퀄컴은 그동안 삼성전자의 가장 중요한 첨단 파운드리 공정 고객이었다"며 "퀄컴의 움직임은 TSMC의 첨단공정 경쟁력이 적어도 2025년까지는 삼성전자를 크게 앞설 것이란 의미"라고 해석했다. 궈 연구원이 분석처럼 퀄컴이 2024년까지 삼성전자 파운드리 고객에서 이탈한다면 삼성전자로서는 매출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삼성전자가 차세대 반도체 제조 기술인 게이트올어라운드(GAA·Gate-All-Around) 공정으로 3나노 초도 양산에 성공했지만 대형 고객사들의 물량 소식이 전해지지 않는 점도 시장의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디일렉에 따르면 최초 고객은 비트코인 채굴 주문형반도체(ASIC)를 만드는 중국 팹리스 판세미(PanSemi)인 것으로 알려졌다. 디일렉은 또 퀄컴이 일부 물량을 위탁생산할 수 있다는 '예약(Reserve)'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고도 보도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퀄컴 역시 아직 고객사는 아닌 상태다.

반면 대만 매체인 디지타임스는 TSMC가 주요 고객사들이 3나노 공정을 사용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언급한 주요 고객사에는 애플, 퀄컴, 인텔, 엔비디아, 브로드컴, 미디어텍, AMD 등이 모두 포함됐다. 이들은 이미 TSMC의 선단 공정을 활용해 자신들이 설계한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

일본 닛케이 역시 이 부분을 지적했다. 이 매체는 지난 8일 "3나노 양산을 발표한 삼성전자가 첨단 경쟁에서 TSMC를 앞선 것으로 보이지만 실태는 다르다"고 보도하면서 그 근거로 고객사를 공개하지 않은 점을 꼽았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반도체 생산라인을 둘러보며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왼쪽은 두 정상이 브리핑을 받는 동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과 별도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 2022.5.20 [사진=뉴스1]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반도체 생산라인을 둘러보며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왼쪽은 두 정상이 브리핑을 받는 동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과 별도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 2022.5.20 [사진=뉴스1]
익명을 요구한 한 반도체 전공 교수는 "파운드리에서는 어느 고객사를 유치했느냐가 매우 중요하다"며 "팹리스라는 게 파운드리를 쉽게 바꿀 수가 없다. 삼성전자가 GAA 기반의 3나노 초도 양산에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대형 고객사들이 볼 때 아직 믿을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풀이했다.

이어 "반도체 업황 둔화로 파운드리 수요가 줄 것이라는 분석이 많은데 TSMC 물량에는 큰 변동이 없고, TSMC를 추격하는 파운드리 업체들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TSMC의 실적은 글로벌 반도체 업계 구조상으로 볼 때 향후에도 견조한 상태가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한 우물만 몇십 년 동안 판 TSMC를 이길 수 있겠나"라며 "다른 건 몰라도 파운드리에서만큼은 반도체 생태계가 아예 무너지지 않는 이상 현 시점에서 삼성이 TSMC를 꺾는 건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