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우주로 간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는 토종 기술로 완성한 국내 최초의 실용위성급 발사체다. 부품만 약 37만 개에 달할 정도로 항공우주 분야의 최신 과학기술을 총동원한 결과물이라는 평가다. 누리호 개발 사업을 주도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비롯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단암시스템즈 등 약 300개 국내 민간 참여 기업들은 지난 12년 동안 끌어모은 모든 역량을 이날 누리호에 담아 창공으로 쏘아 올렸다. 누리호 개발 사업의 주역들은 “대한민국이 우주개발 선진국을 향해 진일보한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화-엔진, KAI-총조립…300여 기업 '우주 기술력' 함께 날았다

“우주 개발 역사에 큰 자산”

고정환 항우연
발사체개발본부장
고정환 항우연 발사체개발본부장
고정환 항우연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 본부장은 누리호 개발 사업을 진두지휘한 인물로 꼽힌다. 서울대와 미국 텍사스A&M 대학원에서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한 그는 20년 넘게 로켓을 연구한 최정예 전문가다. 그는 “어제 성공한 기체도 오늘 실패할 수 있다”며 우주발사체 개발 사업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누리호 1차 발사도 위성 모사체를 지구 궤도에 투입하는 데 실패했을 뿐 나머지 99%에선 성공했다고 했다. 그는 “모든 과정이 대한민국의 우주 개발 역사에 큰 경험과 자산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누리호의 심장’ 엔진 개발을 맡은 한영민 항우연 발사체엔진개발부장은 기체 폭발 가능성을 키우는 ‘연소 불안정’ 현상을 성공적으로 해결했다. ‘엔진 자주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발사체 엔진 개발은 초기 점화나 시동 중 약간의 변화만으로도 엔진이 손상되고, 그 원인 분석에만 4~5개월이 걸리는 지난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오승협 항우연 발사체추진기관개발부장은 국내 발사체로는 최초로 엔진 클러스터링(묶음) 기술을 누리호에 적용하는 과정을 이끌었다. 발사체 추진 기관이란 연료와 산화제를 로켓 엔진에 공급하는 시스템으로 인체에 비유하면 혈관에 해당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1차 발사 이후 지상 시험과 해석을 완벽하게 수행했기 때문에 2차 발사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예상했다”고 말했다.

장영순 항우연 발사체체계개발부장은 발사체의 부분별 성능 기준을 설정하고 중량 및 규격을 배분하는 일부터 총조립하는 업무를 총괄했다. 그는 “시작부터 모든 단계가 중요하고 여러 사람의 노고가 필요한 매우 어려운 과정이었다”고 돌아봤다.

민간 중심 전환 분수령

누리호 개발 사업에 참여한 민간기업은 300여 개에 달한다. 항우연 소속 연구원들이 기본 개념을 정립하고 설계하면, 이를 토대로 민간기업들이 발사체 부품을 제작해 항우연에 납품하는 방식이다. 최종 조립과 발사 및 평가 과정에서도 항우연과 민간기업 소속 전문가들의 긴밀한 협업이 이어진다.

김종한 한화에어로 
추진기관 파트장
김종한 한화에어로 추진기관 파트장
김종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추진기관생산기술팀 파트장은 누리호의 액체로켓 엔진 및 구성품을 개발했다. 그가 있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16년 3월 누리호 75t급 엔진 초도 납품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75t급 엔진 34기 등 총 46기의 엔진을 제작했다. 김 파트장은 “(액체로켓 엔진은) 세계에서도 몇 안 되는 나라가 극비 기술로 독점하고 있으며 국방력과 직결되기 때문에 우방과도 공유하지 않는 기술”이라고 귀띔했다.

임감록 KAI
발사체체계팀장
임감록 KAI 발사체체계팀장
임감록 KAI 발사체체계팀 팀장은 체계 총조립과 추진제 탱크 제작 등을 이끌었다. 그는 “내년부터는 민간 업체 주관으로 한국형 발사체 고도화 사업을 진행한다”며 “우리 회사가 국내 유일의 발사체체계 종합회사로 성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이 밖에 항공·우주비행체용 전자장비인 에비오닉스를 공급한 단암시스템즈를 비롯해 열제어 분야의 한양이엔지, 추력벡터제어의 스페이스솔루션, 항법의 덕산넵코어스, 연소기·가스발생기의 비츠로넥스텍 등 수많은 민간 업체가 누리호 개발 사업이라는 금자탑을 쌓는 데 주춧돌이 됐다는 평가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