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문태 씨엔알리서치 대표가 미국 임상대행 사업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이주현 기자
윤문태 씨엔알리서치 대표가 미국 임상대행 사업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이주현 기자
미국, 유럽 등 선진 시장에 신약을 내놓을 정도로 성장한 국내 바이오산업에서 아직 미국 시장에 진출하지 못한 분야가 있다. 신약을 내놓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하는 문턱인 ‘임상시험’을 관리하는 임상수탁기관(CRO) 서비스다.

매출 기준 국내 CRO 1위 기업인 씨엔알리서치가 미국 시장에 진출한다. 윤문태 씨엔알리서치 대표는 12일 “올 상반기 미국의 한 CRO 기업 지분을 일부 인수하고 사업 파트너로 계약을 맺을 것”이라고 했다.

“국내 제약·바이오 美 임상 지원”

"美 CRO업체 지분 인수…글로벌 시장 개척"
CRO는 국내 신약 개발사들에 잇따라 쓴맛을 안겨줬던 ‘아픈 손가락’으로 꼽힌다. CRO는 제약사의 임상시험 진행, 데이터 관리, 허가 업무 등을 대행해주는 전문기관이다. 임상을 설계하는 건 제약·바이오 기업의 몫이지만 현장에서 임상 업무를 조율하는 건 CRO의 일이다. 국내 업체들이 해외 임상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지 못했을 땐 해외 CRO 기업들의 임상 관리가 도마에 오르곤 했다. 다국적 제약사들을 우선시하다보니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게 현실이었다.

씨엔알리서치의 미국 시장 진출은 국내 신약개발 업계에 단비 같은 소식이다. 현지 CRO 기업과 원활한 의사소통이 쉽지 않았던 국내 신약개발사들이 든든한 우군을 얻게 돼서다. 씨엔알리서치는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지난달 코스닥시장에 상장하면서 실탄으로 150억원을 마련했다.

윤 대표는 “데이터 관리 역량을 갖춘 미국 CRO에 지분투자를 할 것”이라며 “국내 제약사들의 임상 1·2상을 대행하는 사업모델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씨엔알리서치는 미국의 한 CRO 기업 지분을 인수하기 위해 협의 중이다. 국내 신약개발사들과도 미국 임상 계약 수주 논의를 병행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CRO 시장 규모는 60조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연간 6000억원 규모인 국내 시장은 해외 업체 20곳과 국내 업체 45곳이 절반씩 나눠 갖고 있다. 그만큼 영세하다는 의미다. 씨엔알리서치는 2020년 기준 341억원의 매출을 냈다. 윤 대표는 “미국 시장 진출을 목표로 하는 국내 신약개발사들이 늘어나면서 앞으로 해외 임상 CRO 수요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며 “꼼꼼한 의사소통을 무기 삼아 국내 제약사들의 미국 임상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임상 데이터, 해외 눈높이에 맞춘다

씨엔알리서치는 해외 임상 사업을 위해 데이터 관리 시스템부터 개편하기로 했다. 이 회사는 자체 임상 정보 관리 플랫폼인 ‘아이엠트라이얼’을 연내 출시할 예정이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국내 임상에서 안전성이나 약효를 입증했더라도 미국에서 임상을 하려면 식품의약국(FDA)에 새로운 데이터를 내야 했다. 한국과 미국 규제기관이 요구하는 데이터 형식이 달라서였다. 씨엔알리서치는 새로운 정보 관리 플랫폼을 통해 국제 임상 데이터 표준 컨소시엄(CDISC)에 맞게 임상 데이터를 구축하기로 했다.

해외 임상 서비스에 특화한 ‘글로벌 규제업무(RA)’ 전문팀도 신설했다. 지난해 초 330명이었던 인력도 100명 늘려 430명으로 확충했다. 미국 CRO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 동물실험과 임상개발연구기관(CDRO) 사업에도 진출하겠다는 게 윤 대표의 설명이다. 임상을 관리하는 수준을 넘어 바이오 벤처기업들의 임상 설계 컨설팅까지 하겠다는 얘기다.

윤 대표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원격진료의 중요성이 부각된 만큼 원격 모니터링을 활용한 임상 관리도 준비 중”이라며 “2019년 GC셀과 합작법인으로 세운 지씨씨엘을 통해 임상 검체 분석을 일원화하고 데이터 관리 사업도 하겠다”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