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범석 루닛 대표(왼쪽)와 문여정 IMM인베스트먼트 상무 / 사진=김범준 기자
서범석 루닛 대표(왼쪽)와 문여정 IMM인베스트먼트 상무 / 사진=김범준 기자
루닛이 단순히 ‘국내 1호 딥러닝 스타트업’이라고 해서 주목받는 것은 아니다. 루닛은 세계 최대 영상장비 회사인 GE헬스케어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GE헬스케어는 전 세계 인공지능(AI) 제품을 검토해보니 성능과 안정성이 가장 뛰어나다고 판단했다. 액체생검 세계 1위 업체인 가던트헬스와는 파트너십 체결은 물론 투자금 300억 원까지 받아왔다.

폐질환·유방암 진단 보조, 기술력으로 승부

문여정 IMM인베스트먼트 상무(이하 문) 코스닥시장 상장을 위한 기술성특례평가를 두 곳의 평가기관이 진행했는데, 지난 6월 모두 AA가 나왔어요. 헬스케어 기업 중 두 곳의 기관에서 모두 AA가 나온 것은 루닛이 처음이죠?

서범석 루닛 대표(이하 서) 네, 맞습니다. 상장은 오래전부터 준비를 해왔습니다. 현재 자금 소요는 물론 앞으로 사업 확장에 필요한 자금을 고려했을 때 좀 더 적극적으로 자금을 유치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조만간 상장 예비심사청구서를 한국거래소에 제출할 예정입니다. 10~11월이 될 듯하고요. 실제 증시 데뷔는 내년 초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상장을 위한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요.

제가 루닛에 처음 투자한 게 2016년 8월이에요. 당시에는 IMM인베스트먼트가 아니라 인터베스트에 몸담고 있었어요. 루닛 창업 3년 만에 첫 투자를 하며 인연을 맺은 셈이죠. 간단하게 사업 소개를 부탁드려요.

루닛 제품은 크게 암 진단 분야인 인사이트(Lunit Insight) 제품군과 암 치료 분야인 스코프(Lunit Scope)로 나눌 수 있습니다. 루닛 인사이트는 흉부 엑스레이 분석을 통해 폐질환 진단을 보조하는 소프트웨어인 루닛 인사이트 CXR과 유방암 진단 보조 제품인 루닛 인사이트 MMG로 나뉘고요. CXR은 흉부 엑스레이 내 폐암을 유발할 수 있는 9가지 폐 질환을 99%에 가까운 정확도로 검출할 수 있습니다. MMG는 유방촬영술 내 유방암을 96% 정확도로 검출해 의료진의 진단을 보조하는 제품입니다.

루닛 스코프는요?

루닛 스코프는 AI로 암세포 조직을 분석해 예후를 예측하는 소프트웨어입니다. 환자의 항암 치료 반응을 예측하는 제품이죠. AI를 통해 조직 슬라이드의 전체 영역을 고배율로 분석하고, 세포 하나 하나를 선입견 없이 빠르고 면밀하게 판독할 수 있습니다. 개별 환자에게 맞는 면역항암제 등 치료제를 선별하는 바이오마커 역할을 합니다. 기존 세포, 혈관, 단백질, DNA, RNA 등 생화학적 지표와 달리 AI를 통해 정상과 병리를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평가합니다. 아예 새로운 영역의 바이오마커라고 할 수 있죠.

최근에 영상의학과 의사들과 만나 식사를 했는데, 루닛 얘기가 나왔어요. 루닛을 쓰면 뭐가 좋은지 궁금해하더라고요. 사실 AI 스타트업을 표방하며 루닛같이 디지털 헬스케어를 하겠다는 곳이 많아요. 루닛만의 강점은 뭔가요?

첫 번째는 기술력입니다. 딥러닝 기술의 가능성을 초기에 포착해 KAIST 출신들이 모여 창업을 했어요. 정확도가 루닛 인사이트 CXR은 최대 99%, 루닛 인사이트 MMG는 96%입니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진료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제품을 만들어 과학적·임상적으로 잘 증명해냈습니다. 그리고 사업화 과정에서 글로벌 확장을 성공적으로 해낸 점도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GE헬스케어, 후지필름, 필립스, 가던트헬스 등 글로벌 영상 및 의료기기, 진단 업체들과의 협업이 실제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증거입니다.

글로벌 전략 파트너 추가 확보, 유통망 확대 기대

가던트헬스 얘기를 좀 해보죠. 가장 최근인 지난 7월 투자 유치를 했죠? 가던트는 세계적인 액체생검 진단기업입니다. AI 기반 영상 판독을 하는 루닛과는 어떻게 연결이 될 수 있죠?

언뜻 보면 연관이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루닛 제품과 가던트헬스의 액체생검 제품을 누가 사용하는지, 사용자(user) 입장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루닛 스코프 사용자는 암 환자들에게 항암제를 처방하는 종양내과 의사들입니다. 이들은 가던트의 액체생검 제품도 사용합니다. 의사가 루닛과 가던트 제품을 둘 다 쓸 수 있다는 점이 연결고리입니다.

액체생검을 처방하는 주요 사용자층인 종양내과 의사들이 루닛 스코프에 대한 니즈도 있다는 얘기네요.

그렇죠. 검사 유형을 놓고 보면 가던트와 루닛이 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핵심은 사용자가 같다는 겁니다. 가던트는 혈액종양내과 액체생검 진단시장에서 8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10명 중 8명의 의사가 가던트를 쓴다는 건데, 이들에게 루닛 스코프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루닛 제품으로서는 대단히 큰 유통망을 확보한 셈입니다. 가던트로부터 투자금 300억 원도 확보했는데, 단순 투자뿐 아니라 전략적 요소들이 많이 포함된 거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추가로 전략적 투자자(SI) 유치도 추진하고 계시죠?

네, 현재 복수의 SI들과 협력 가능성을 얘기하는 단계입니다.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일정이나 업체명을 지금 말씀드리기는 좀 곤란해요. 다만 현재 진행형이고, SI와 함께 재무적 투자자(FI) 유치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루닛은 비즈니스 모델을 잘 잡은 것 같아요. 영리하게 병원을 이미 뚫어놓은 글로벌 업체들을 영업 대상으로 삼았어요.

의사들이 기존에 사용하던 영상기기에 루닛 제품이 탑재되는 구조입니다. 별도의 툴(tool)이나 기기가 필요없는 셈이죠. 사업화 관점에서 매우 유리한 플랫폼이라고 봅니다. 우리 제품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영업사원들이 이걸 병원에 가서 영업하는 식으로 매출을 올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이런 영업망을 직접 갖추는 건 비현실적이에요. 그래서 이미 글로벌 영업망이 구축된 업체들과 협력하는 겁니다. GE헬스케어 영업사원이 그들의 기기를 병원에 판매할 때 루닛 제품도 함께 파는 거죠. GE 장비가 잘 팔리면 우리도 이익이 늘어납니다. 시너지를 내는 거지요.

루닛은 논문도 참 많이 내는 벤처입니다. 스타트업이 굳이 이런 걸 할 필요가 있느냐고 보는 분들도 계세요.

제품만 만들면 되는 건 아니라고 봐요. 우리가 제품을 공급하는 업계, 즉 의료계를 잘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제품의 성능을 의사들에게 과학적으로 입증해내야 하는 거죠. 그렇지 못하면 의사가 안 씁니다. 업계를 좀 더 잘 이해하자는 차원에서 활발하게 논문을 내고 있습니다.

(루닛은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2020’ 등 국제 학회와 학술지에 100여 편 이상의 논문을 게재하거나 발표했다. 최근 와이바이오로직스가 유럽종양학회(ESMO)에서 공개한 ‘YBL-006’의 임상 1상 중간 결과에서 루닛의 AI 기반 조직 분석 바이오마커 ‘루닛 스코프 IO’가 활용됐다.)

좋은 전략이라고 봐요. VC 투자자로서 여러 회사를 만났는데, 다양한 제품을 만들겠다는 회사도 있었고, 심지어 자신들의 제품을 통해 “의사를 줄이겠다”는 곳들이 있었어요. ‘굳이 의사를 안 써도 됩니다’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회사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루닛은 그렇지 않았죠.

고맙습니다.

지배구조 얘기를 좀 해보죠. 루닛 창업자인 백승욱 이사회 의장은 2017년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죠. 그때 서 대표가 신임 대표가 됐고요. 당시 기관투자가들 사이에서는 사실 걱정이 많았습니다.

대표이사 변경은 갑자기 결정한 게 아닙니다. 아주 오랜 기간 계획을 해왔던 일입니다. 어떻게 하면 회사를 더 잘 키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의 결과죠. 창업 직후에는 기술이 주된 경쟁력인 회사였습니다. 엔지니어링이 가장 중요했죠. 그래서 그걸 가장 잘 아는 창업자인 백 의장이 직접 대표를 했습니다. 그 다음 단계는 제품화입니다. 제품을 사업화하는 과정에서는 업계에 대한 전문성이 중요한 시기입니다. 글로벌 확장 부분도 중요하고요. 그런 측면에서 전문의인 제가 대표를 맡게 됐습니다.

(서 대표는 KAIST에서 생명과학을 전공했다. 이후 서울대 의과대학에서 가정의학과 전문의를 마쳤다. 2016년 루닛에 합류해 2018년 대표에 오르기 전까지 루닛 의학총괄이사를 지냈다.)

폐·유방 CT 등 3D 진단 제품도 준비
대표이사가 바뀔 때 기관투자가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전문의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했고, 저도 그래서 지지를 했습니다. 루닛 스코프를 통해 면역항암제 쪽으로 전략을 잡은 것도 그 이후지요?

네. 면역항암제는 2017년 정도부터 고민을 했습니다. 2018년 대표가 되고 나서 그에 대한 전략을 확고하게 설정해나가기 시작했고요. 당시 심혈관 쪽도 다각화 차원에서 검토를 했는데 정리했습니다. 가지치기를 해서 집중하기로 한 거죠.

2017년만해도 키트루다 같은 면역항암제 매출이 얼마 안 됐을 때죠. 면역항암제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도 태반이었고요. 과감했네요.

우리가 만드는 제품과 소위 ‘핏(fit)’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면역항암제는 다른 항암제와 좀 다르죠. 유전체 돌연변이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치료제입니다. 면역세포가 어떻게 활성화되는지 보는 것이 더 중요하잖아요. 우리는 그걸 제대로 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AI로 암 정복’이라는 회사 미션을 정했고, 이걸 실현하기 위한 것은 첫째가 진단(루닛 인사이트)이고, 둘째가 치료(루닛 스코프)인 거죠.

현재 기준으로 루닛 인사이트와 루닛 스코프의 매출 비중이 얼마씩 되나요?

절반 정도씩 됩니다. 루닛 인사이트가 먼저 나오긴 했지만 루닛 스코프 매출이 기대했던 것보다 빠르게 나오고 있습니다. 알고리즘을 라이선스 아웃 하는 방식이다 보니 매출이 큰 폭으로 늘고 있습니다.

루닛 인사이트의 경우 진단 대상 기관이 폐와 유방인데요, 이쪽을 처음에 선택한 이유가 뭐죠? 좀 더 대상을 확대할 계획은 없나요?

폐와 유방을 선택한 이유는 암이 가장 흔하게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검진을 하고 암을 진단하는 과정이 비교적 잘 확립된 대표적인 암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지금은 2차원(2D)인 흉부 엑스레이와 유방촬영 영상을 분석하는데, 다음 단계는 CT, MRI 같은 3D가 될 겁니다. 제품 개발을 거의 마무리했고, 이제 인허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폐와 유방 진단 자체를 2D에서 3D로 확대한다는 얘기네요. 폐와 유방 말고 아예 다른 기관으로 확대할 계획은요?

넓힐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속도를 좀 조절하고 있어요. 새로운 제품 출시 속도에 치우치다 보면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99% 이상의 정확도를 확보한 후 시장에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맞아요. 이미 시장에서는 루닛에 대한 신뢰가 있는데, 여러 개를 동시다발로 들고 나오면 신뢰가 오히려 깨질 수도 있죠. 속도가 중요한 건 아니라고 봐요. 신사업도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네, 기업소비자간거래(B2C) 모델을 고민 중입니다. 아직 뚜렷한 계획이 나온 건 아니에요. 사업이 가능할지 법적인 부분을 따져보는 단계입니다. 예컨대 루닛의 AI 판독 결과를 의사를 거치지 않고 바로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모델을 고민 중입니다. 진단 자체를 이렇게 할 수는 없고 2차 판독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국내는 법적인 규제 때문에 쉽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해외도 법적인 부분을 잘 따져봐야 합니다.

한재영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0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