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수소연구단 직원들이 차세대 그린수소 생산 기술인 알카라인 수전해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대전=김영우  기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수소연구단 직원들이 차세대 그린수소 생산 기술인 알카라인 수전해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대전=김영우 기자
생산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그린수소는 ‘수소경제의 화폐’로 불린다. 수소라고 다 같은 수소가 아니다. 현재도 석유화학 공정이나 천연가스 등을 통해 얼마든지 수소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진짜 수소’로 평가받는 그린수소 생산 방법은 수전해가 사실상 유일하다. 물에 전기를 가해 수소와 산소로 분리하는 기술로 수소연료전지의 역반응이다. 국내 수전해 기술은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소경제 시대 가장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분야로 전문가들은 ‘화폐’를 찍어낼 수 있는 수전해를 지목하고 있다.

“문제는 그린수소야!”

"그린수소 찰떡궁합 차세대원자로 잡아라"…빌 게이츠도 가세
수전해가 이뤄지는 전해조(수소생산 탱크) 역시 전극과 촉매, 분리막 등 셀이 쌓인 스택이 핵심이다. 기존 계통전력과 연계할 수 있으면 1세대 수전해, 재생에너지와 연결할 수 있으면 2세대 수전해라고 한다. 2세대 수전해는 북유럽과 미국 등이 2000년대 후반부터 개발해왔다. 진입장벽이 상당히 높은 기술로 꼽힌다.

2세대 수전해 기술은 알카라인, 양성자교환막(PEM), 고온 수전해(SOEC) 등 크게 세 가지다. 연료전지와 마찬가지로 사용하는 전해질에 따라 나뉜다. 알카라인 수전해는 수산화이온(OH-)을 통과시키는 고분자전해질을 사용한다. 전극 소재는 니켈, 코발트 등을 쓴다. 노르웨이 넬과 일본 아사히카세이가 선도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PEM 수전해는 양성자(H+)를 통과시키는 불소계 고분자전해질에 백금, 루비듐, 이리듐 계열의 귀금속을 전극으로 사용한다. 영국 ITM파워, 캐나다 하이드로지닉스가 앞서 있다. SOEC는 양성자를 통과시키는 고체 세라믹을 전해질로 쓰는 차세대 전해조다.

연료전지와 비슷한 것 같지만 수전해는 기술적으로 더 어려운 부분이 있다. 전해조 안에서 수소와 산소가 섞이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수소는 질량이 극히 작고 가벼워 어떤 물질이든 통과할 수 있다. 전해조 안에 산소와 언제라도 만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산소 안에 수소가 4% 이상 섞이면 폭발이 일어난다. 2019년 5월 강릉 강원테크노파크에서 발생한 수소폭발 사고도 이런 식이었다. 수소와 산소를 분리하는 ‘분리막’이 수전해에서 중요한 이유다. 알카라인 수전해 분리막(지르폰)은 벨기에 아그파가, PEM 수전해 분리막(나피온)은 미국 듀폰이 독점 공급하고 있다.

원자로 써야 그린수소 안정적 확보

수전해의 가장 큰 문제는 전기를 어디서 끌어오느냐다. 화석연료로 만든 전기를 쓰면 탄소중립 취지가 무색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와 주로 연계하고 있지만 재생에너지는 낮과 밤, 일조량, 풍속, 기후 등에 따라 공급량이 크게 요동치기 때문에 수전해와 연결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쉽지 않다. 공급량이 갑자기 떨어지는 ‘저부하’ 영역에선 산화극과 환원극이 뒤바뀌거나, 안에 귀금속 재료들이 깨지면서 전해조가 망가지기 일쑤다. 김창희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수소연구단장은 “전기 공급량 급변 시 수전해 시스템 안전성과 내구도를 확보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 기술”이라며 “국내에선 연구가 거의 안 돼 있다”고 설명했다.

철광석에서 산소를 없애 강철을 만들 때 코크스 대신 수소를 넣는 수소환원제철 역시 궁극적으로는 수전해 기술이 필요하다. 수소환원제철이 현실화되면 제철소에서 뿜어내는 막대한 이산화탄소가 물로 바뀐다.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수전해 기술은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를 통한 수전해다. SMR은 소듐냉각고속로(SFR), 고온가스로·초고온가스로(HTR·VHTR), 납냉각로(LFR), 용융염원자로(MSR) 등 차세대 원자로를 말한다. 대형 경수로보다 크기가 훨씬 작아 관리가 수월하면서 사고 위험을 획기적으로 줄인 원자로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가 소유하고 있는 테라파워와 서던컴퍼니를 비롯해 오클로파워, 뉴스케일, 웨스팅하우스 등 미국 주요 원자력 업체가 모두 SMR 개발에 뛰어들었다. 일부는 상용화가 임박했다. 영국 캐나다 중국 프랑스 일본 스위스 호주 등도 뛰어든 상태다.

특히 SMR은 가동 온도가 500~1000도로 경수로보다 높아 이를 SOEC와 연계하면 그린수소 생산이 가능해진다. 상온에서 재생에너지와 연결해 수소를 생산하는 알카라인이나 PEM 수전해보다 더 안정적이고 효율적이다. 이해원 두산 수소경제추진실장(부사장)은 “수전해와 SMR의 결합은 그린수소 생산에 정확히 부합하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이해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