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지 웰트 대표 / 이승재 기자
강성지 웰트 대표 / 이승재 기자
“재료는 다 있는데 백종원이 없는 상태입니다. 어떤 메뉴를 만들지, 메뉴 가격은 어떻게 책정할지를 하나씩 정해가는 단계죠.”

스마트벨트 ‘웰트’를 개발한 강성지 웰트 대표는 디지털 치료제의 현 상황을 요리에 비유해 설명했다. 갤럭시 워치, 애플 워치 등 스마트 기기가 늘어나면서 혈압이나 심박수, 하루에 걷는 걸음 수 등 다양한 정보(재료)가 수집되고 있지만 이걸 의학적인 치료로 어떻게 가져갈지(메뉴) 고민하는 단계여서다. 현재 웰트의 주 메뉴는 알코올 중독, 불면증, 근감소증 치료제다.

메뉴 ➊ 알코올 중독, 트리거 포인트와 금단 증상의 바이오마커를 찾는 것이 관건

웰트의 알코올 중독 파이프라인은 미국 페어테라퓨틱스의 ‘리셋(reSET)’을 기반으로 개발 중이다. 리셋은 2017년 9월 세계 최초로 FDA의 승인을 받은 디지털 치료제다. 리셋은 알코올을 포함해 코카인, 대마 등 약물중독 치료를 위한 모바일 앱 형태의 치료제로,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 사용할 수 있다. 웰트는 리셋의 기능 중 알코올에 관한 치료 프로세스를 강화해 국내에 출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 8월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상황에 집중해야 한다. 술을 마시고 싶어지는 순간(트리거 포인트)과 술을 끊었을 때 나타나는 금단 현상(크레이빙 포인트)이다. 이 두 가지 상황에서 나타나는 신체적 변화들을 바이오마커로 삼아 중독 치료를 돕고 치료 순응도를 높인다. 대표적인 바이오마커는 손이 떨리는 현상이나 빨라지는 심장 박동수, 일정치 않은 수면시간 등이다. 강 대표는 “휴대폰이나 스마트워치 등을 이용하면 쉽게 수집할 수 있는 데이터이기 때문에 사용자의 접근성이 높다”고 말했다.

웰트는 알코올 중독 디지털 치료제를 개인맞춤형으로 확장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피드백이 가능하다는 디지털 치료제의 장점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일반 의약품은 한번 시장에 내놓고 나면 환자들의 피드백에 따라 약물의 기능을 추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반면 디지털 치료제는 사용자의 데이터가 쌓일수록 더욱 정교해진다. 강 대표는 “만약 환자가 매일 다니는 길목에 술을 살 수 있는 가게가 있으면 다른 길을 안내하거나 알람을 주는 등 위험요소를 피해갈 수 있도록 디지털 치료제가 개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종의 정밀의료다. 알코올 중독 디지털 치료제는 올해 안에 제품 개발을 마칠 예정이다.

메뉴 ➋ 밤이 긴 현대인을 위한 불면증 치료제, 기존 연구 적극 활용

불면증은 디지털 치료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대표적인 적응증이다. 수시로 환자의 행동에 개입할 수 있는 디지털 치료제의 특성상 인지행동치료가 필요한 불면증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또 불면증의 원인이나 불면증 환자의 수면 패턴 등에 대한 기존 연구도 풍부한 편이다. 침대에 누운 시간과 잠에 빠지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 중간에 잠에서 깨는 횟수와 다시 잠드는 데 걸리는 시간, 낮잠 여부 등이 주요 지표가 될 수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리셋을 개발한 페어테라퓨틱스가 올해 불면증 디지털 치료제인 ‘솜리스트’를 출시했고, 영국에서는 빅헬스가 ‘슬립피오’를 출시했다. 웰트의 불면증 디지털 치료제가 이들과 다른 점은 여러 바이오마커를 융합해 사용자의 수면 질 개선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점이다.

강 대표는 “기존 치료제는 바이오마커를 개별적으로 다루는 데 그친다”며 “우리가 개발 중인 치료제는 바이오마커 간 관계를 파악해 단순한 수면 일기가 아니라 종합적인 판단과 개입을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웰트는 이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와 불면증 디지털 치료제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

메뉴 ➌ 글로벌 제약사가 주목하는 근감소증 디지털 치료제

근감소증 디지털 치료제는 어떤 기업도 선점하지 못한 파이프라인이다. 웰트가 연구 단계부터 하나씩 쌓아올리는 첫 파이프라인인 셈이다. 여러 적응증 중 강 대표가 근감소증을 선택한 이유는 ‘노바티스가 수조 원을 투자한 적응증이기 때문’이었다. 근감소증 시장이 그만큼 클 것이라고 판단해서다. 더구나 노바티스를 포함해 머크, 사노피 등 여러 제약사가 뛰어들었지만 아직 근감소증 치료제는 개발되지 않았다.

근감소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평가 요인이 고르게 개선돼야 한다. 근육의 양, 근육의 힘, 기능이다. 강 대표는 여러 제약사의 실패 원인을 “근육의 양을 늘리는 데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웰트는 재활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근감소증 디지털 치료제를 지향하고 있다. 강 대표는 “근육량과 힘은 기기 측정을 통해 데이터를 얻을 수 있고, 기능은 걷는 속도를 지표로 삼을 수 있다”며 “이 데이터를 종합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운동법 등을 제공하는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는 근감소증 디지털 치료제의 사용자 선별 작업을 하고 있다.

강 대표는 “어떤 파이프라인이든지 사용자를 최대한 구체적이고 정교하게 타기팅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스마트워치를 통해 모은 1만 명의 혈압 정보보다 고혈압 환자 100명의 혈압 정보가 의학적으로 활용하기에는 훨씬 더 가치가 있다. 강 대표는 “순도 높은 데이터를 이용해 스테디셀러 디지털 치료제를 만드는 것이 웰트의 전략”이라고 말했다.

57만 명 | 수면장애 관련 진료 환자 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수면장애로 진료를 받은 국내 환자는 약 57만 명이다. 수면장애로 진단받은 환자 수는 5년간 연평균 약 8%씩 증가했다.

최지원 기자 j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