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컴퓨터인 '위상 양자컴퓨터' 소자의 중요한 물리학적 특성이 한국 스웨덴 그리스 등의 국제 공동연구로 처음 밝혀졌다.

한국기초과학연구원 소재분석연구부 김해진 책임연구원팀은 '위상절연체'인 비스무스텔루라이드(Bi2Te3)의 표면 전자 움직임을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10일 발표했다. 위상절연체(topological insulator)는 내부는 절연체(전기가 안 통하는 물질)고 표면에서만 2차원적으로 전기가 흐르는 특이한 부도체다. 불변량 등 위상수학적 속성을 갖는 물질인 '위상물질'의 일종이다. 에너지 손실 없이 전기 전도가 가능해 양자컴퓨터 소자로 쓰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위상절연체 표면에서 움직이는 전자를 내부로 끌어들여 도체로 만들 수 있다. 때에 따라 전기가 흐르고 막히는 반도체와 같은 특성을 부여할 수 있는 셈이다.

현재 실리콘 반도체는 소스-드레인 전자 이동을 통해 0과 1(0 또는 1) 상태만을 구현한다. 이른바 '비트'다. 그러나 위상절연체 기반 반도체는 전자의 스핀 상태를 구현할 수 있기 때문에 '큐비트(0 그리고 1)' 연산이 가능해진다. 이른바 '스핀 큐비트'다. 스핀은 전자의 양자역학적 운동량을 기술하는 물리량이다. 전자가 팽이가 돌듯 나선 형태로 솟구치거나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연상하면 된다. 통상 업스핀(위쪽), 다운스핀(아래쪽)으로 구분되며 스핀에 따라 자기장의 특성이 달라진다.

연구팀은 비스무스텔루라이드의 표면에 있는 일명 '디락 전자'가 내부 표면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처음으로 규명했다. 육면체 형태의 비스무스텔루라이드를 제작한 뒤 자체 보유한 초고분해능 수차보정 투과전자현미경과 해외 연구진이 보유한 핵자기공명분광기(NMR) 등 장비를 써서 움직임을 관찰했다. 그 결과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특정 지점(T3) 표면에서 디락 전자가 존재하고, 이를 내부로 끌어내리고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전자 움직임과 모양, 에너지를 양자역학적으로 계산하는 수학 도구인 범밀도함수(DFT)를 썼다.
'양자컴퓨터' 소재의 반도체적 특성 최초로 발견됐다
<기초과학지원연구원 초고분해능 수차보정 투과전자현미경(가운데 장비)와 소재분석연구부 김해진 책임연구원(오른쪽 끝)>

김해진 책임연구원은 "디락 전자는 양자역학계에서 존재가 알려져 있었지만 구체적 움직임은 그동안 밝혀진 바 없다"고 말했다. 디락 전자의 움직임을 규명한 것은 베일에 싸여있는 위상절연체 특징을 밝혀낸 것이고, 이로써 위상 양자컴퓨터 구현에 한걸음 더 나아갔다는 설명이다. 현재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각국 글로벌 기업이 정부 지원 하에 위상 양자컴퓨터 구현을 위한 연구개발(R&D)을 진행하고 있다. 위상 양자컴퓨터는 IBM 구글이 개발중인 '초전도큐비트' 방식 양자컴퓨터와는 작동방식이 다르다.

이번 연구엔 기초과학연을 비롯해 스웨덴 스톡홀름대, 그리스 데모크리토스 연구소, 아랍에미리트(UAE) 칼리파대, 슬로베니아 요제프 스테판연구소 등 6개국 연구진이 참여했다. 그리스와 UAE는 범밀도함수 등 계산과학 연구를 담당했다. 핵자기공명분광기(NMR) 연구는 스웨덴이 전담했다. 기초과학연은 비스무스텔루라이드 소재를 제작하고 전자현미경으로 분석한 뒤 이 데이터를 계산과학 팀(그리스와 UAE)에 전달했다. 이번 연구성과는 글로벌 학술지 네이처의 자매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9일자에 실렸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