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우리를 좀 규제해달라”고 호소했다. 유럽연합(EU)의 콘텐츠 규제 이슈와 관련해서다. 규제 필요성을 인정할 테니 페이스북의 특수성을 어느 정도 이해해 달라는 게 저커버그의 메시지였다.

EU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불법 콘텐츠 유통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페이스북에 대한 공세를 이어갔다. 전 세계 정보기술(IT)업계는 EU와 페이스북의 행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콘텐츠를 유통하는 회사의 책임 범위와 관련한 선례가 만들어지고 있어서다.

○“민주적 기준, 정하기 어려워”

저커버그는 지난 17일자 파이낸셜타임스에 ‘거대 기술기업을 더 많이 규제해야 한다(Big Tech needs more regulation)’는 제목의 기고를 실었다. 그는 이 기고에서 “민주적 가치와 관련한 결정을 기업이 혼자서 내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페이스북과 같은 플랫폼은 자유로운 표현과 안전, 개인정보보호법 등과 관련해 늘 사회적 가치와 균형을 이룰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지난해 선거와 유해 콘텐츠, 개인정보보호, 데이터 식별성 등 네 가지 부문에 대한 규제를 요구받았다”며 “이에 따라 프랑스, 뉴질랜드를 비롯한 EU 정부와 손잡고 적절한 규제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페이스북의 딜레마에 대해서도 토로했다. 그는 “페이스북은 다른 플랫폼에 비해 유해 콘텐츠에 대한 경고를 보다 명확하게 게시하고 있으며, 정치적 남용 가능성에도 투명하게 대응하고 있다”면서도 “문제는 민주주의에서 유해 콘텐츠나 정치적 광고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정보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개인 정보의 주권이 뒤섞이는 부분도 지적했다. 그는 “정부에서 원활한 국가 운영을 위해 개인 정보를 수집할 수는 있지만, 이때 이 정보가 ‘누구의 것’인지가 모호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기고문엔 “규제를 만드는 일이 장기적으로 모든 이들에게 이로운 일이 될 것이라는 표현”도 있었다. EU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그는 “인터넷은 사회적, 경제적 권한 강화를 위한 하나의 힘”이라며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는 유지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EU “우리에게 적응해야”

전향적인 내용을 담은 기고문에도 불구하고 EU는 페이스북에 대한 압박 공세를 이어갔다. EU 관계자들은 기고문이 신문에 등장한 17일 저커버그와 만나 경고의 메시지를 전했다.

티에리 브르통 산업담당 집행위원은 저커버그 면담 직후 취재진에게 “우리가 페이스북에 적응해야 할 것이 아니라 이 회사가 우리에게 적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거대 IT 기업들이 혐오 발언과 허위 정보를 적절히 제한하지 못한다면 더 엄격한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페이스북은 앞서 각종 유해 콘텐츠와 관련한 적절한 시스템을 가동하겠다며 EU에 관련 자료를 제출했다.

저커버그 기고문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브르통 집행위원은 “페이스북의 제안은 너무 느리고 책임 강도가 낮아 적절하지 않다”고 일축했다. 저커버그는 같은 날 베라 요우로바 EU 부집행위원장을 만나 혐오 발언 관련 규제를 확립하기 위한 새로운 규제기관을 설립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EU는 페이스북 등의 SNS를 규제하기 위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검토하고 있다. 관련 가이드라인은 이르면 올해 안에 발표된다.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