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특수전사령부 군의관으로 복무하는 이원철 대위는 요즘 휴가를 나오면 더 바쁘다. 그가 창업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링거워터의 주력 제품 ‘마시는 수액(경구수액)’이 알려지면서 휴가 중에도 일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군인 신분인 이 대위가 어떻게 회사를 세울 수 있었을까. 그는 “국방부의 창업대회와 민간단체의 멘토링 도움으로 꿈꾸던 사업에 도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군 내무반이 청년 창업공간 역할도 하고 있다. 국방부는 2016년부터 비영리 창업지원단체 스파크, KT&G 등과 함께 ‘국방스타트업 챌린지’ 행사를 열어 장병들의 창업을 돕고 있다. 이런 지원과 스타트업 열풍에 힘입어 휴식시간을 쪼개 창업을 준비하는 장병이 늘어나는 추세다.
軍 내무반서 창업 꿈 이루는 청년 장병들
◆군 경험이 창업 씨앗으로

이 대위가 설립한 링거워터는 경구수액인 ‘링티’를 개발했다. 일반적으로 수액은 흡수율을 높이기 위해 정맥주사로 투여한다. 그러나 전문 의료인이 필요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다.

이 대위는 “훈련 중 탈진하는 장병이 있는데 장소에 따라서는 정맥주사를 처방하기 어려운 곳도 많다”며 “경구수액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군의관·민간인 의사 동료들과 함께 개발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링거워터는 제품의 독창성을 인정받아 국방스타트업 챌린지에서 육군참모총장상을, 정부의 범부처 통합행사인 ‘도전! K-스타트업 2017’에서 국방부 장관상을 받았다. 지난해 말엔 크라우드펀딩 업체 와디즈에서 1억5000만원 이상을 모금하며 식품 분야 모금액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대위는 “국내 할인점과 제휴해 오프라인 판매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스타스테크 역시 장병들이 모여 설립한 스타트업이다. 양승찬 스타스테크 대표는 강원 인제군에 있는 제3포병여단에서 복무(2016년 3월~2017년 12월)하면서 동료 장병들과 함께 친환경 제설제를 개발했다. 그는 “제설작업을 하던 차량에 녹이 스는 걸 보고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스타스테크의 제설제는 불가사리 추출물을 활용한 게 특징이다. 제설제의 주원료인 염화칼륨은 콘크리트·철 등을 부식시키는 부작용이 있다. 스타스테크는 불가사리의 특정 추출물이 부식을 억제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활용해 기존 제품 대비 부식률을 10분의 1 수준으로 낮춘 제설제를 개발할 수 있었다.

스타스테크는 기술력을 인정받아 지난 4월 기술전문 액셀러레이터(창업지원기관) 블루포인트파트너스로부터 초기 투자금 1억5000만원을 받았다. 지난달에는 민간투자 주도형 기술창업지원(TIPS) 프로그램에 선정되기도 했다. 양 대표는 “다음달부터 생산에 들어간 뒤 판매처를 확보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카투사 출신인 염승민 한국의료인공지능 대표는 주한미군 병원에서 복무하면서 창업을 결심했다. 염 대표는 “군에서 다양한 의료 데이터를 접하다 보니 직접 회사를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국의료인공지능은 당뇨병 환자의 식단을 인공지능(AI)으로 관리해주는 서비스 ‘닥터인텔리’를 올해 선보일 계획이다. 환자의 혈당치와 식단을 머신러닝(기계학습) 기술로 분석해 개별 환자에게 최적화한 식단을 제공할 예정이다.

◆기업·민간단체도 장병 창업 지원

장병들이 스타트업 꿈을 키울 수 있었던 데는 국방부뿐만 아니라 민간단체와 기업의 역할도 컸다. 스파크, KT&G 등은 멘토링과 자금 지원으로 장병들의 창업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이 대위는 “다양한 군 출신 스타트업이 창업대회를 통해 사업 토대를 닦고 있다”며 “멘토들의 조언으로 제품을 우선 출시하고 시장 반응을 살펴보는 등 구체적인 경영전략을 수립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군 창업대회에 참가하는 장병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참가팀은 600여 팀 정도였으나 올해는 800여 팀(약 2400명)이 참가 신청을 했다. 지난해 행사에 참가한 한 장병은 “스타트업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장병들의 창업 동아리 결성을 지원하는 부대도 있다”고 말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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