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 살 거면 큰 것으로."

불황에도 불구하고 가전제품 구매 트렌드는 '대대익선(大大益善)' 쪽으로 흐르고 있다. 가격은 꼼꼼하게 따지지만 크기만은 양보하지 않는다는 게 일선 가전제품 매장 직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 같은 추세는 백색가전과 TV 부문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사이즈가 큰 제품의 단점으로 지목받았던 전력 소모량 문제가 빠르게 해결되고 있는 것도 소비 트렌드가 변하고 있는 이유다. '탄소 경제'가 부상하면서 주요 기업들이 전기를 덜 먹는 제품들을 잇따라 내놓고 있는 것.가장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는 제품은 냉장고다. 올해 2월 출시된 LG전자 디오스 냉장고(752ℓ)의 소비전력은 35.9?i였다. 하지만 4월 모델은 35.6?i,5월 모델은 35.3?i 등으로 하루가 다르게 전력 소모량이 낮아지고 있다.

◆덩치 커진 백색가전

양문형 냉장고 시장에서는 지난해 주력 제품이던 600ℓ대가 점점 사라지고 그 자리를 700ℓ대 제품이 메우고 있다. 올해 상반기 팔린 제품 중 700ℓ대 이상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65%에 달한다.

업계 관계자는 "대부분 가정에서 김치냉장고,와인냉장고,냉동고 등 '세컨드 냉장고'를 쓰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정 내 냉장 · 냉동 설비의 보관용량은 1000ℓ 이상으로 봐야 한다"며 "한꺼번에 다량의 음식물을 구입한 후 냉장고에 오래 보관해 두는 게 최근의 트렌드"라고 설명했다.

보조 냉장고 역할을 하는 김치냉장고도 용량이 큰 스탠드형을 중심으로 사이즈가 커지고 있는 추세다. 삼성전자 '하우젠 아삭 칸칸칸'은 310ℓ의 음식물을 보관할 수 있다.

냉장고의 대형화 추세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는 최근 미국 시장을 겨냥한 820ℓ '프렌치도어 냉장고'를 내놓았다. 외관은 기존 735ℓ 제품과 똑같으며 내부 용적만 확대했다.

드럼세탁기도 '빅 사이즈'가 잘 팔린다. 올해 상반기 국내 시장에서 팔린 드럼세탁기 중 15㎏ 이상 제품의 비중은 25%에 달한다. 10% 내외에 머물렀던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대용량 제품의 판매가 늘어났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최근 밀고 있는 제품은 17㎏대다. LG전자 관계자는 "드럼세탁기는 드럼통의 낙차를 이용해 세탁하기 때문에 크기가 클수록 빨래가 깨끗이 된다"며 "많은 빨랫감을 한 번에 모아서 세탁하는 가정이 늘어난 것도 대형 제품의 인기가 높아진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고 설명했다.

◆TV도 휴대폰도 '큰 화면' 열풍

TV와 휴대폰 같은 디스플레이 제품들도 점차 사이즈가 커지는 추세다.

평판 TV(LCD와 PDP를 함께 일컫는 말)는 40인치대가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올해 상반기에 팔려 나간 LG전자의 LCD(액정표시장치) TV 중 47인치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20%가 넘는다. 47인치 이상 LCD TV 시장은 2007년 9%,지난해 15% 등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반면 32인치 LCD TV의 비중은 2007년 43%,2008년 34%,올해 상반기 30% 등으로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PDP(플라즈마 디스플레이) TV는 대형화 속도가 훨씬 더 빠르다. LG전자 보보스 PDP TV의 경우 50인치 제품 판매 비중이 55%로 절반을 넘어섰다. 업계 관계자는 "TV는 한 번 큰 화면으로 보기 시작하면 작은 화면으로 되돌아가기 힘든 제품"이라며 "앞으로도 대형화 추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터치폰이 대중화한 휴대폰 시장에서도 3인치 이상 대형 화면을 갖춘 제품만 '물건' 취급을 받는다. 휴대폰을 통해 동영상을 보고 게임을 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지면서 생긴 새로운 트렌드다.

삼성전자는 3.7인치 AMOLED(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 화면을 장착한 '옴니아HD'를 최근 출시했다. 각각 3.2인치와 3.3인치의 LCD창을 채용했던 햅틱2와 T옴니아보다 사이즈가 더 커졌다. 비교적 화면의 크기가 작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LG전자의 아레나폰,뷰티폰 등도 화면 크기가 3인치에 달한다.

업계 기록은 일본 도시바가 갖고 있다. 이 회사는 최근 4.1인치 제품(TG01)을 내놓았다. 이 제품의 별칭은 '노트북폰'이다. 노트북으로 착각할 만큼 휴대폰 화면이 크다는 뜻이 담겨 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