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로 유럽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대금 지급 문제를 이유로 프랑스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전면 차단하기로 했다. 독일도 사흘간 공급을 중단한다. 난방 수요가 많은 겨울철이 다가올수록 에너지 대란을 막기 위한 유럽 각국의 움직임이 더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프랑스에 가스 공급 끊어

러시아 국영 에너지기업 가스프롬은 9월 1일부터 프랑스 최대 가스공급업체 엔지에 천연가스 공급을 완전히 중단한다고 30일(현지시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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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공급한 천연가스 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가스프롬은 “대통령령에 따라 해외 구매자가 계약 조건대로 전액을 지급하지 못하면 추가 가스 공급은 금지된다”고 했다. 가스프롬은 하루 전에는 “가스 공급을 줄인다”고 밝혔다. 하루 만에 아예 공급을 끊는다는 더 강도 높은 조치를 내놨다. 이에 대해 엔지는 “소비자와의 약속을 충족하기 위한 물량은 확보해놨다”며 “공급 중단으로 발생할 수 있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를 찾고 있다”고 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가스프롬은 31일부터 9월 2일까지 사흘간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 가동도 중단한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서방의 제재 때문에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해 노르트스트림1을 통한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고 했다. 노르트스트림1은 러시아 천연가스를 유럽에 공급하는 주요 수송로로 독일 공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독일 에너지당국인 연방네트워크청의 클라우스 뮐러 청장은 “기술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정비할 때마다 러시아는 정치적 결정을 내려왔다”고 말했다. 가스프롬이 공급을 줄이거나 중단할 때마다 ‘정비’를 이유로 들었다는 얘기다.

러시아는 지난 6월 중순부터 가스관 터빈 반환 지연을 이유로 노르트스트림1 공급량을 40%로 축소했다. 7월 11일부터는 열흘간 정기 정비를 이유로 공급을 완전히 중단했다. 이후 공급을 재개했지만 공급량을 또다시 절반으로 줄여 현재는 20% 수준으로 쪼그라든 상태다.

대책 마련 분주한 유럽

유럽 전역에 천연가스 공급이 아예 끊길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번지고 있다.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에 대규모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에너지 가격이 상승세를 타면서 제재에 참여하지 않은 나라들이 러시아산 에너지를 적극 사들이고 있다. 그 덕분에 가스프롬은 올해 상반기 2조5000억루블(약 55조8000억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 순이익을 거뒀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러시아는 올 들어 석유와 천연가스 판매로 970억달러(약 130조원)의 수익을 올렸다”며 “제재가 유명무실하다”고 했다.

유럽은 전방위적으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유럽연합(EU)은 9월 9일 긴급회의를 연다. EU 의장국인 체코의 요세프 시켈라 산업통상부 장관은 “EU 에너지위원회 특별 회의를 소집한다”며 “우리는 9월 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만날 것”이라고 했다.

비축량도 적극 늘리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유럽 가스 비축량은 현재 평균 80%에 달한다”며 “11월 1일까지 모든 국가가 80%를 채우겠다는 목표에 빠르게 다가서고 있다”고 했다. 원자력과 풍력 발전 등도 검토 중이다. 독일은 애초 올해 말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할 방침이었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원전 3기의 수명을 내년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최근 꺼내 들었다.

핀란드 등 발트해와 인접한 8개 나라는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에서 벗어나겠다며 2030년까지 해상 풍력 에너지 발전량을 지금보다 7배 늘리기로 했다. 일부 기업은 천연가스 대신 석유에 눈을 돌리고 있다. 독일 화학기업 바스프는 천연가스 대신 석유를 활용하고 천연가스를 많이 사용하는 공장의 생산량을 줄이기 시작했다.

박주연 기자 grumpy_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