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지난 5일 ‘글로벌 법인세(global corporate tax)’도입을 제안하면서 전 세계가 시끌시끌합니다. 시기적으로 이제 막 위기를 벗어나는 국면에서 나온 ‘난데없는’ 동반 증세론인 데다가 각 국별로 득실이 갈리고 있다는 점에서 더 그렇습니다. 특히 미국이 자국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위해 논의를 주도하고 있어 단순히 경제적 논리로만 접근하기 어려운 측면까지 있어 골치아픈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갑작스레 증세론 들고 나온 미국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지난 5일 시카고 국제문제협의회(CCGA) 연설에서 “법인세 바닥경쟁을 멈춰야 한다”며 각국 법인세에 하한선을 두자고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미국이 제안한 하한세율은 21% 정도입니다.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들과 중앙은행장들이 모이는 IMF(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WB) 연례총회를 하루 앞둔 시점에 내놓은 제안입니다. 회의 주제를 미리 통보한 것이죠. 지난 8일에는 미국이 140개국에 ‘다국적 대기업들로 하여금 매출이 발생하는 나라에 세금을 내도록 하자’는 제안서를 보냈다는 사실이 보도됐습니다.

당연히 미국의 이 같은 제안으로 국제 사회는 찬반론이 시끄럽게 갈리고 있습니다. 이미 법인세가 높은 편이고 다국적 기업들이 자국에서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는 영국과 독일 프랑스 등은 환영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반면 법인세율이 낮은 스위스, 아일랜드 등은 곤혹스런 입장입니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법인세율이 높은 편이어서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앞으로 나올 구체적 제안 내용에 따라 파장이 클 수 있다는 판단 아래 내용 파악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구글세(디지털세)와 비슷...세율·대상 달라
많은 언론보도를 통해 이미 소개됐지만 글로벌 법인세 도입 논의는 사실 오래된 이슈입니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통해 이미 ‘디지털세’란 이름으로 10년째 도입 방안을 논의해 오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달라진 것은 논의 주체와 세율, 부과 대상 정도입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논의 주도 주체입니다. 그 동안은 프랑스 독일 같은 유럽연합(EU) 국가들이 논의를 주도했습니다. 구글 애플 아마존 등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이 유럽에서 막대한 매출과 이익을 올리면서도 각 국별로 다른 법인세제의 빈틈을 악용해 세금을 거의 내지 않거나 아주 적게 낸다며 새로운 세제(디지털세=일명 구글세)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타깃이 된 이유는 간단합니다. OECD는 미 기업들이 ‘국가간 소득 이전을 통한 세원잠식(BEPS=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방식을 통해 세금을 탈루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를 ‘더블 아이리시 위드 더치 샌드위치(Double Irish with Dutch Sandwich)’라고 부르는데, 구글의 예를 들어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구글은 세율이 낮은 아일랜드(12.5%)에 법인을 세우고, 미국 본사에서 개발한 지식재산권을 이 법인에 헐 값에 넘깁니다. 아일랜드 법인은 다시 아일랜드와 네덜란드에 각각 자회사를 설립해 이를 통해 유럽 등에서 영업을 합니다. 아일랜드 자회사는 현지 영업을 통해 얻은 영업이익 대부분을 지식재산권 사용료(로열티) 명목으로 다시 네덜란드 자회사를 통해 아일랜드 법인에 넘깁니다. 네덜란드와 아일랜드 간엔 로열티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협정이 있어 이 과정에서 세금을 줄일 수 있습니다.

뒤바뀐 미국의 입장
결론적으로 이런 방식으로 구글은 미국과 유럽에서 발생한 영업이익의 대부분에 대한 낮은 세금만 내고 이익의 80%를 버뮤다 등 조세 회피처에 묻어두고 있다는 것이죠. 미국과 유럽연합 모두 이 같은 세금 탈루 행태를 비판했는데 해법은 달랐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법인세를 낮추는 방법으로 이들 기업을 자국 안으로 끌어 들이려 한 반면, 유럽연합은 최저한세율과 디지털세 도입으로 해결하려 했던 겁니다. 디지털세는 간단히 말하면 매출을 올린 해당 국가에 세금을 내도록 하고, 본국 세율보다 낮아 덜 낸 부분은 본국이 추징하도록 하자는 아이디어입니다. 당연히 EU 국가들에게 유리한 안 입니다.

미국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들어오면서 입장이 확 바뀌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과 함께 코로나 위기 극복을 외치며 최근 약 4조2000억달러(약 4620조원)규모의 경기부양안과 인프라 투자안을 내놓으며 당장 돈이 급한 상황이 됐습니다. 적자 국채를 찍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이제 세금을 올리는 수 밖에 없는데, 가장 손쉬운 게 법인세입니다. 마침 트럼프 행정부 시절 법인세를 35%에서 21%(지방세 포함시 최고세율 25.9%)로 낮춰놨기 때문에 인상(21%→28%)하기도 좋고, 국민적 저항도 적은 묘수입니다. 문제는 미국 혼자 올리면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 나가기 때문에 동시에 올리자는 안을 내놨는데, 마침 OECD내에서 그 동안 논의해 온 디지털세가 그 구조입니다.

미국은 다만 기존 디지털세에서 최저 세율을 올리고(12.5%→21%)과 부과 대상을 확대(빅테크 기업→세계 매출 100대 기업)하는 쪽으로 바꿔 제안했습니다. 미국의 법인세율 인상 움직임에 비례해 최저세율을 높여 미국의 충격을 줄이면서, 과세대상도 미국 중심의 빅테크기업 뿐 아니라 다른 나라 제조·서비스사들까지 포함시키자는 의도입니다.미 재무부는 각국에 발송한 공문에서 “미국 기업들을 차별하는 어떤 결과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美 주도 글로벌 법인세 인상…韓, 거부할 수 있을까 [여기는 논설실]

복잡한 한국 셈법
반응은 엇갈립니다. 그 동안 논의를 해왔던 나라들은 긍정적인 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주요 20개국(G20)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은 지난 7일 화상회의를 열고 올해 중반까지 글로벌 법인세 도입 방안을 도출키로 했다고 합니다.

유럽연합 국가들도 지금 모두가 한 푼이 아쉬운 때입니다. 세계 각국이 코로나19 대처 과정에서 재정적자가 불어났고 이를 어떻게든 메꿔야할 상황이 된 것입니다. IMF가 최근 발표한 ‘2021 재정모니터’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각국은 코로나 극복에 총 16조달러(약 1경8000조원)를 쏟아부었고 그 과정에서 평균 재정적자가 2019년 국내총생산(GDP)의 2.9%에서 11.7%로 뛰었습니다.

반면 스위스나 아일랜드처럼 낮은 세율로 기업들을 유치해왔던 나라들은 곤혹스런 입장입니다.

한국은 사정이 좀 복잡합니다. 일단 법인세율이 27.5%(지방세 포함)로 미국이 제안한 최저세율에 비해 여유가 있어 인상 압박은 덜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삼성전자나 현대차그룹등 글로벌 기업들 입장은 다릅니다. 해외 사업장이 많고 수출 비중이 높다 보니 생산과 판매 전략을 전면 수정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해외 전략을 완전히 바꿔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논의의 틀이 바뀌면서 법인세 부과 방식부터 대상 업종까지 새로 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지금으로서는 어떤 기업이 어느 정도의 타격을 받을지 예단하기 어렵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고민은 또 있습니다. 만약에 글로벌 법인세의 구체적 내용이 불리하다면 논의에서 빠져도 될까요. 그러기 어려워 보입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최근 자국 전기차 배터리 생태계 구축을 위해 LG와 SK간 배터리 분쟁에 개입해 합의를 통한 타결을 관철시키기도 했습니다.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뿐 아니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까지 직접 개입했다는 후문입니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다른나라 개별 기업의 문제까지 개입하고 미국의 이해를 보호하겠다는 입장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행정부 못지않은 ‘미국 우선주의’ 행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경제 회복과 이에 필요한 재정조달 문제를 풀기 위한 글로벌 법인세 논쟁에 한국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앞으로 미국이 그런 움직임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볼 기회가 적지 않아 보입니다.

박수진 논설위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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