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11월 7일 발행된 연해주 우수리스크 지역지 '골라스 우차시흐샤'
창간호에 "우리가 지지대와 희망이 되겠다…우리를 지원해달라" 호소해

[※ 편집자 주 : '에따블라디'(Это Влади/Это Владивосток)는 러시아어로 '이것이 블라디(블라디보스토크)'라는 뜻으로, 블라디보스토크 특파원이 러시아 극동의 자연과 역사,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생생한 소식을 전하는 연재코너 이름입니다.

]

"우리는 우리 조국의 부활을 믿고 있습니다.

기운을 내서 혐오스러운 압제에서 벗어나고 자유롭고 독립적 국가가 될 수 있기를 믿고 있습니다.

"
1918년 11월 7일 러시아 극동 연해주(州) 우수리스크(니콜스크-우수리스크)에서 현지 한인 학생들이 주축이 돼 러시아어로 발행한 신문 '골라스 우차시흐샤'(학생들의 목소리) 창간호의 한 구절이다.

[에따블라디] 망국의 한 서린 연해주 한인 청년 신문 창간호 '눈길'
기자는 최근 지방 향토사학자인 파니치킨 니콜라이를 통해 러시아 연방 극동중앙국립문서보관소에 보관된 102년 전 한인 학생들이 발행했던 신문의 내용 일부를 최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신문에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타국에서 학업을 이어나가야만 했던 당시 한인 청년들의 고뇌가 그대로 묻어났다.

신문은 조국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현지에서 힘을 기르고 노력하기를 독자들에게 강하게 주문했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신문은 "대한제국(까레야)이 공식적으로 일제의 강점을 인정한다는 11월 18일 협정체결 소식이 전해진 뒤 한 인물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유언을 남겼다"고 소개했다.

[에따블라디] 망국의 한 서린 연해주 한인 청년 신문 창간호 '눈길'
내용과 시기를 고려해봤을 때 이 협정은 을사늑약(乙巳勒約·1905년 11월 17일)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신문은 자결한 인물을 애국자로 소개하고 그의 이름을 러시아어로 소개했다.

지면이 너무 흐릿해 정확히 누구인지를 추정하기는 어렵지만, 성씨가 '민'으로 시작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자결하고 유언을 남겼던 민영환(閔泳煥·1861∼1905)을 지칭한 것으로 생각된다.

[에따블라디] 망국의 한 서린 연해주 한인 청년 신문 창간호 '눈길'
을사늑약 체결에 분노한 민영환은 11월 30일 '이천만 조선동포'를 향한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다.

을사늑약은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체결한 조약이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05년 대한제국의 외교적 권리를 을사늑약을 통해 무력화시키고 사실상 자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보호국으로 전락시켰다.

을사늑약 이후 일본은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뺏는 한일병합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공포했다.

[에따블라디] 망국의 한 서린 연해주 한인 청년 신문 창간호 '눈길'
학생들의 목소리는 창간호에서 "우리가 지지대가 되겠다.

희망이 되겠다"면서 "니콜스크-우수리스크의 유일한 신문 학생들의 목소리를 지원해달라"고 호소했다.

파니치킨 니콜라이씨는 "한인 애국자들이 조국의 독립을 이루기 위해 학생들의 목소리라는 신문을 발행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를 바탕으로 현지 한인들의 지원을 호소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러시아 연해주에서는 구한말부터 현지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독립 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다양한 신문들이 발행됐다.

대표적으로 해조신문(1908년), 대동공보(1908년), 대양보(1911년), 권업신문(1912년) 등이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