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에 전직 고관 참석, 재무관 출신은 '자문위원' 맡아
재무성 관계자, '총리 관저 양해 받은 인사'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위상이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자 사채업과 비슷한 '소비자 금융'에 비유하며 비판적이던 일본이 슬그머니 AIIB에 접근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7월 룩셈부르크에서 열린 AIIB 총회 세미나에는 뜻밖에 그동안 AIIB를 비판해온 일본 정부의 전직 고관들이 참석했다.

위상 높아진 中 주도 AIIB…비판하던 日도 슬그머니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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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성의 전신인 대장성에서 국제금융업무를 담당했던 재무관 출신으로 국제통화기금(IMF) 부총재와 아시아 개발은행(ADB) 이사를 지낸 가토 다카토시(加藤隆俊. 78)도 그중 한명이다.

그는 이달부터 11명인 AIIB의 '국제자문위원회' 위원에 이름을 올렸다.

"IMF와 ADB에서의 경험을 살려 조언을 해주면 좋겠다는 의뢰가 들어와 받아들였을 뿐 일본 정부의 입장과는 관계가 없다" 는게 본인의 설명이지만 "총리 관저의 양해를 받아" 이뤄진 인사라는 사실을 재무성 고위 관계자가 시인했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29일 보도했다.

국토교통성 출신 OB인 야마구치 에쓰히로(山口悦弘) 해외건설협회 전무이사의 모습도 보였다.

이들이 AIIB 행사에 참석한 배경에는 일본과 중국의 관계 개선도 한몫했지만 AIIB의 국제적 위상 정착이 더 중요한 요인으로 풀이된다.

미국과 일본을 제외한 57개국이 참가해 2016년 출범한 AIIB 회원국은 올 여름 100개 국가·지역으로 늘었다.

경쟁관계인 아시아개발은행(ADB)의 68개 국가·지역을 크게 앞서는 규모다.

여기에 아프리카 여러 나라가 가입을 기다리고 있을 정도다.

일본은 AIIB 운영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미국과 함께 가입하지 않았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재무상은 AIIB를 대금업을 의미하는 소비자 금융에 비유한 적도 있다.

미국과 함께 가장 많은 돈을 출자해 역대 총재 자리를 독차지해온 비슷한 성격의 역내 국제금융기구인 ADB의 위상 저하를 우려해서다.

AIIB를 중국이 주도하는데 대한 경계감도 작용했다.

그러나 우려와는 달리 AIIB의 실제 운영은 건전하다는 평가가 많다.

피에르 그라메냐 룩셈부르크 재무장관은 4번째인 올해 총회에서 "유럽은 (AIIB) 출범 전부터 같이 규정을 만들어 왔다"면서 "AIIB는 유럽은행이기도 하다"고 까지 평가했다.

AIIB가 취급한 프로젝트는 인도의 교통인프라 정비 등 50건으로 융자규모는 96억 달러(약 11조2천200억 원)에 달한다.

신용등급도 가장 높은 트리플A를 받았다.

5월에는 런던시장에서 처음으로 채권도 발행했다.

발행이율이 미국 국채 수준으로 낮았는데도 발행액의 2배에 달하는 응찰이 이뤄졌다.

시장의 평가를 받았다는 의미다.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 정권의 거대경제권 구상인 '일대일로'의 도구로 사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중국 정부는 오히려 AIIB를 국제협조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쇼 윈도'로 활용하고 있다.

국익을 추구하는 전략적인 융자는 훨씬 거대한 자금을 보유한 중국수출입은행 등의 국유은행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리췬(金立群) AIIB 총재는 "일본기업도 입찰과 투자에 참여하라"며 추파를 보내고 있다.

아사히는 중국이 주도하는 AIIB와 어떤 관계를 맺을지가 일본의 장기적인 과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