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신오쿠보 거리 모습

지난 4일 신오쿠보 거리 모습

“조국에서 도와주지 않아도 좋다. 제발 괴롭히지만 말아 달라…”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수출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제외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달 초 일본을 방문했던 여야의원단 중 한명이었던 김광림 자유한국당 의원이 전한 재일교포들의 목소리입니다.

여야 의원단은 방일 기간 중 한인회와 민단 관계자들을 두루 만났는데 최근 급속히 경색된 한일관계 탓에 일본에서의 경제활동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전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일본 문화의 특성상 한국처럼 대대적인 반한 시위나 한국제품 거부 운동은 아직 일어나지는 않고 있지만 서로 눈치를 봐가며 한국 상점이나 제품에서 거리를 둘 수 있다는 걱정이 적지 않습니다. 일본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한국인들 사이에선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징용피해자 판결 이후, 일본 정부가 지속적으로 불만의 목소리를 냈지만 8개월간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은 탓에 일본의 경제공격 빌미를 제공한 한국 정부에 대한 ‘원망’의 목소리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일본 언론을 통해 한국 내 반일정서와 일본제품 불매운동 상황이 상세하게 전해지면서 일본 내에서의 혐한정서와 한국 상품 불매 운동이 일지 않을까 걱정하는 시선도 없지 않습니다. 사실 지난해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 일부 한국인 유학생들의 거주지에 ‘한국인 물러가라’거나 ‘한국인은 똥’같은 문구를 적어놓거나 쪽지를 붙여놓는 사태가 발생해 일본에 거류하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걱정이 번진 적도 있습니다.
 지난 4일 신오쿠보 거리 모습

지난 4일 신오쿠보 거리 모습

하지만 전반적으로 일본 내 여론은 아직까진 겉으로는 ‘과거사 문제와 문화적 선호는 별개’라는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 날 NHK가 일본 일반인들의 반응을 전하기도 했는데요. 대다수 일본인들은 “과거사 문제와 경제대립은 별개 문제인데 빨리 양국이 화해했으면 좋겠다”거나 “정치·외교 문제와 한류를 좋아하는 것은 관계가 없다”는 등의 반응을 내놨습니다. 외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일본인의 특성을 고려할 때 그들의 ‘본심’은 아닐 수 있겠지만 일단 표면적으로는 일본의 모습은 한국에 비해 평온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 같은 모습은 지난 주말 도쿄의 대표적인 한인거리인 신오쿠보 거리에서도 확인됐습니다. 일요일이었던 4일 점심께 신오쿠보 거리의 한 닭강정 매장에는 가족단위로 한국음식을 즐기려는 일본인들로 매장내 좌석이 가득 찼습니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치즈 닭갈비’집들과 일본에서 유행하는 한국식 핫도그가게, 김밥집 등에도 길게 줄을 선 모습을 보는 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10대 후반~20대 초반 여성들이 주로 찾는 한국 화장품 가게와 한국식 식재료를 판매하는 한인상가도 평소와 다름없이 일본인들로 북적였습니다. 저녁때에는 주요 한국식 고기 집(불고기집)에 일본인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지난 4일 신오쿠보 거리 모습

지난 4일 신오쿠보 거리 모습

아직까지 신오쿠보 거리는 한일 갈등이 불거지기 이전과 크게 다른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한국 상인들은 “한순간에 분위기가 급변할 수 있다”며 조심하는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고, ‘일왕 사죄’발언을 하며 한류인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던 기억이 선명하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신오쿠보를 찾던 일본인들의 발길이 순식간에 끊기면서 상권이 몰락하다시피 했습니다.

특히 아직까진 혐한 세력이 신오쿠보 거리에서 활동을 하고 있지 않지만, 언제라도 가두시위에 나서 한국 상가를 출입하는 일본인들에게 위해성 발언을 가할 경우 한국에 좋은 감정을 지닌 일본인들마저 한국 상가 방문을 주저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신오쿠보 상인들은 신오쿠보 거리 자체가 한일관계를 살피는 바로미터로 부각되는 것에도 부담감을 느끼는 모습이 뚜렷했습니다.

타국에서 오랜 차별의 시선을 이겨내며 구축된 신오쿠보 거리의 활력이 앞으로도 계속 유지되길 바랍니다. 한일관계의 ‘외풍’이 일본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고 있는 많은 교포와 한인 사업가들의 활동에 더 이상 족쇄가 되지 않기를 기대해 봅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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