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지난 8월 생전 퇴위 의사를 밝힌 이후 처음으로 가진 기자회견에서 퇴위 관련 언급을 극도로 삼가는 모습을 보였다.

23일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일왕은 자신의 83세 생일(23일)을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생전 퇴위 문제에 대해 "(자신의) 존재 방식, 책무에 대해 표명했다.

많은 사람들이 각각의 입장에서 정성껏 생각해 주고 있는 것에 깊이 감사한다"고 간단히 말했다.

이날은 지난 8월 생전 퇴위 의사를 발표한 뒤 처음 맞는 생일이다.

일왕이 언론에 직접 자신의 의견을 밝힌 것도 이후 처음이다.

전체 기자회견이 진행된 12분30초 중 퇴위문제에 대한 언급에 할애한 시간은 35초 뿐이었다.

퇴위 관련 언급은 필리핀 방문, 동일본 대지진 5주년, 구마모토(熊本) 지진, 리우 올림픽 등 지난 한해 있었던 일들에 대해 각각 간단히 소회를 밝히는 대목 중 하나로 나왔다.

일왕은 이날 황거(皇居)에서 일반인 방문객을 상대로 열린 축하행사에서도 퇴위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대신 전날 있었던 니가타(新潟) 화재 사고에 대해서만 "많은 사람이 추위 속에서 피난을 하게 됐다.

건강 피해가 없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생일을 맞아서는 퇴위 문제에 대해 언급을 최대한 줄이고 있지만, 아키히토 일왕은 지난 11월 말에는 죽마고우를 통해 간접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직접 발표한 것은 아니지만 언론과 인터뷰한 친구의 입을 통해 ▲ 특별법이 아닌 황실전범(皇室典範·왕위 계승 방식을 규정한 법률) 개정을 통한 생전 퇴위 등 ▲ 섭정(攝政) 반대 등 입장을 확실히 밝혔다.

일본 정부와 여당 자민당은 생전 퇴위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생전 퇴위를 인정하더라도 특별법 제정을 통해 아키히토 일왕에 대해서만 한 차례만 인정하자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대부분의 일반 국민들은 황실전범 개정을 통한 생전 퇴위 허용에 찬성하며 일왕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난 12일 NHK의 여론조사에서 '퇴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견은 11%뿐이었다.

퇴위를 인정하는 쪽에서는 '특별법'(25%)보다는 '황실전범 개정'(53%) 의견이 2배 이상 많았다.

한편, 이날 생일 축하행사에는 3만3천여명이 찾아 1989년 아키히토 일왕 즉위 이후 황거의 일반인 참가 행사 중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렸다.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bk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