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선 TV토론서 트럼프 우세시 엔화가치 폭등 가능성"

'미스터 엔'으로 불리는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전 일본 재무성 재무관은 26일 엔화 강세가 서서히 이어져 내년에는 달러당 90엔에 다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오야마가쿠인(靑山學院)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이날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일본의 통화정책이 거꾸로 가는 상황에서 일본 엔화가치의 상승은 자연스러울 따름"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사카키바라는 1990년대 재무성 재무관으로 재직할 당시 엔화 환율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 '미스터 엔'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는 올해 들어 엔화가 추가 약세를 기록할 것이라고 했던 애널리스트들의 컨센서스와 달리 엔화가치가 달러당 120엔에서 100엔 이하로 급등하리라는 것을 정확히 예측했다.

그는 "엔화가치는 천천히 상승해 내년 말이면 달러당 90엔선을 찍어도 놀랍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엔화가치는 일본은행이 지난 21일 금융정책결정회의 끝에 향후 금융정책의 초점을 통화량에서 장단기 국채금리 격차관리로 전환한다고 밝힌 뒤에도 약세로 전환하기는 커녕 하루 만에 달러당 100.10엔선을 찍은 뒤 100엔선에서 위태롭게 움직이고 있다.

도쿄 외환시장에서 이날 오후 3시 15분 현재 엔화가치는 달러당 100.87엔을 기록 중이다.

엔화가치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 이후 달러당 99.02엔까지 급등한 뒤 3~4차례에 걸쳐 장중 100엔선 아래로 떨어진 바 있다.

엔화가치는 올해 들어 달러화 대비 19% 상승해 선진국 통화 중 가장 절상 폭이 크다.

사카키바라는 "당국이 환율에 대한 통제권을 잃었다고 보지 않는다"면서 "2013년 이후 실시한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의 공격적 금융완화 정책은 효과적이며, 달러당 95∼100엔선의 환율은 일본 경제가 감내할 만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엔화 강세가 가속화해 달러당 90엔이 깨지고 80엔을 찍을 경우 미국과 공동개입에 관한 논의가 시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이날 미국 대선 최대 분수령으로 꼽히는 대선 첫 TV토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압도할 경우 달러화 약세가 가속화해 엔화 강세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내다봤다.

사이먼 데릭 BNY멜론 애널리스트는 "1976년이나 1980년, 2000년 사례를 볼 때 달러화는 대선 토론이 이뤄진 날 종종 크게 반응했다"면서 "가장 민감한 것은 달러·엔 시장"이라고 지적했다.

외환 분석가들은 지난주 일본은행의 정책 전환에도 시장이 크게 움직이지 않은 이유는 시장참가자들이 TV토론에서 트럼프가 힐러리를 이겨 엔화가치가 치솟을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유노스케 이케다 노무라 애널리스트는 "트럼프의 승리에 대한 투기 확대는 달러화 약세를 가속할 텐데 그 주범은 6억 달러 상당의 달러 자산을 보유한 일본 생명보험사들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들은 글로벌 리스크가 고조된다고 여길수록 헤지 비율을 높이는데, 현재 60% 수준인 이 비율은 TV토론이 트럼프의 승리로 기운다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수준인 80%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서울연합뉴스) 이 율 기자 yulsid@yna.co.kr